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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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진 연락 올까 겁나… 아플 수도 없는 세상 됐다” [의대 정원 갈등]

하루하루 피 마르는 환자들

“암환자 두세달 새 나빠지는데”
“정부, 수습도 못하면서 일 벌여”

병원 노조 “예약변경 업무 폭증
직원들이 고스란히 떠안아” 비판

30일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고려대의료원 교수들의 휴진이 소규모에 그치면서 큰 혼란은 없었지만, 휴진 정기화 등으로 확산할 수 있어 환자들의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며 서울 주요 대형병원 가운데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한 4월 30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한 환자가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온라인 환자 커뮤니티에는 의대 교수들의 휴진과 사직 우려 등에 대한 불만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환자 보호자는 “오늘(30일)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예약이었는데 5월9일로 진료가 미뤄졌다”면서 “우리는 꼭 해야 하는 것(진료)인데, 그들(교수들)에게는 선택이라는 게 있으니… 참 쉽다”고 썼다.

또 다른 환자 보호자는 “뉴스 보기도 겁나고 병원에서 연락이 오면 휴진한다고 할까 봐 겁난다”면서 “아플 수도 없는 세상이 돼버렸다는 게 너무 당황스럽고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 못 했고, 이렇게 (사태가) 길어질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고도 했다.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며 서울 주요 대형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 및 수술을 중단한 4월 30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잠들어 있다. 연합뉴스

한 암환자 커뮤니티에서는 특정병원 담당 교수들의 휴진 정보를 공유하자는 글들도 올라왔다. 한 게시물 작성자는 “혹시 ○○○ 교수님 30일 휴진인가요? 지방에서 올라가고, 그날 진료 예약이 돼 있는데 아직 (진료 여부) 연락을 받지 못했고 병원도 계속 연락이 안 되네요”라고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환자들도 있었다. 한 환자는 “저는 아직 수술을 못 받고 있다”며 “암 환자는 두세 달 사이 기수가 올라가는데 휴진으로 수술이 더 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난다. 정부는 환자를 다 죽일 생각이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환자는 “사태가 해결되지는 않고 점점 더 악화되니 너무 불안하다”며 “정부는 (사태를 수습할) 능력도 안 되면서 왜 (의대 증원 문제를) 건드려 놓았느냐”고 토로했다.

 

의대 교수들이 주1회 휴진에 돌입한 4월 30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의대 교수들의 휴진은 병원 노동자들의 불만도 키우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전날 병원 진료 대기실 등에 성명서를 붙이고 이번 휴진이 “환자와 동료를 사지로 내모는 꼼수단체휴진”이라며 “휴진에 동참한 의사들은 이 사태를 책임져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이날 휴진에 참여한 13개 진료과별 휴진 의사수(총 38명)를 공개하기도 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전체 의사수가 500여명인 점을 감안하면 10%에도 미치지 않는 낮은 비율이다.

그러나 노조는 “교수들이 불과 5일 전에 휴진을 통지해 환자를 기만하고, 직원들에게 업무 과중을 부여했다”며 “교수들의 개별 휴진으로 3000건에 가까운 환자의 검사·수술·진료가 변경 및 취소됨에 따라 직원들의 업무 고충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로 직원들은 지금까지 1만2000여건의 진료 일정을 변경했고, 여전히 1만건 이상이 적체된 상태며 예약 변경 업무로 폭언 욕설에 노출돼 있는 등 과중한 업무를 감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방재승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병원 직원들은 같은 동료인데 왜 이렇게 동료를 사지로 내모는 건지 모르겠다”며 “병원 파산을 막기 위해 교수들이 이렇게까지 (투쟁을) 하는 건데, (이 성명을 본다면) 사직 생각을 안 하던 교수들도 사직하고 싶어질 것 같다”고 착잡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