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할 뻔한 50대 산후도우미가 아기 아빠 덕에 피해를 면했다. 때마침 집에 있던 아기 아빠는 30대 경찰관이었다.
3일 강원 홍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오전 9시쯤 홍천군의 한 가정집에 산후도우미로 첫 출근한 50대 여성 A씨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아들’로 표시된 전화를 받았다. 이 아들은 “사실 나 사채를 빌려서 2000만원 빚이 있다. 그런데 돈을 못 갚아서 지금 납치당해있는 상태”라며 “당장 2000만원을 현금으로 뽑아 집으로 오면 나를 납치한 사람들이 돈을 받아 갈 것”이라고 말했다.
놀란 A씨는 첫 출근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 부모에게 “집에 급한 일이 생겼는데 조퇴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손을 심하게 떠는 등 다급해 보이는 A씨 모습에 아기 부모는 “얼른 가보시라”고 말했다.
현관을 나서려던 A씨는 잠시 주저하더니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싶은데 전화 한 통만 빌릴 수 있느냐”고 물었고, 부부는 아기 아빠의 휴대전화를 빌려줬다. 당시 전화 너머의 아들은 A씨에 “절대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굳이 타인 휴대전화를 빌리는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부부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A씨의 휴대전화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이때 아기 아빠의 머릿속에 보이스피싱범들이 범행하는 동안 절대 전화를 끊지 못하게 한다는 점이 떠올랐다.
아기 아빠는 바로 전날 당직 근무를 선 뒤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강원 홍천경찰서 경무과 소속 김석환(37) 경사였다.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한 김 경사는 통화기록에 남은 A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보이스피싱 범죄를 알리고 현금 인출을 제지했다. A씨가 남편과 만나기로 한 장소를 파악한 뒤 곧장 112에 신고했고, A씨는 다행히 피해를 면했다.
조사 결과 보이스피싱 조직은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만 일치하면 같은 번호로 인식해 연락처에 저장된 이름을 표시하는 스마트폰 취약점을 이용해 A씨를 범행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인 줄 모르고 아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던 수법이었다.
경찰은 해외에서 수신되는 전화는 차단되도록 A씨의 휴대전화 설정을 바꾼 뒤 예방법을 알려주는 등 후속 조치를 했다. A씨는 이후 김 경사 집을 다시 찾아 “덕분에 2000만원을 지킬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김 경사는 “피해를 보지 않으셔서 천만다행”이라며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면 항상 의심하고 경찰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