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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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탱크,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진입… 지상전 ‘초읽기’ [이스라엘, 라파 공습]

휴전협상 중 국경검문소 장악
전쟁 공포 속 수천명 피란길

하마스, 중재국 휴전안 수용했지만
‘지속가능한 평온 추구’ 문구 놓고
이 “영구 휴전 해석될 여지” 거부
‘지상전 강행 뒤 재협상’ 전망 나와
“가자에 갇힌 피란민들 생사 기로”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이스라엘 탱크들이 진입하고 국경검문소를 장악했다. 이스라엘이 라파에 대한 지상전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전쟁의 공포 속에 수천명의 민간인이 다시 피란길에 올랐다. 대규모 인명피해도 예상되는 가운데 휴전 협상 역시 난항이 예상된다.

 

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밤 이스라엘 탱크들이 국경을 넘어 라파 동부로 진입했다고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의 당국자들이 전했다. 이스라엘 지상군의 1단계 군사작전으로 알려졌다.

거침없는 진격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 동쪽에 위치한 케렘 샬롬 국경검문소를 점령한 뒤 이스라엘군 탱크가 국경을 넘어 라파 지역을 질주하고 있다. 라파=신화연합뉴스

이스라엘군은 또 앞서 401기갑여단이 라파 국경검문소의 가자지구 쪽 구역을 장악했다며 그 과정에서 20명의 무장괴한을 사살하고 3개의 지하터널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교전을 통해 라파 동쪽으로 난 살라아딘 도로를 접수하고, 전투기를 동원해 두 차례 라파 동부 외곽을 공습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전투기로 라파 근처 테러리스트 시설 50곳 이상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공습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라파 쿠와이티 병원은 공습 뒤 사망자 5명과 함께 여러 부상자를 받아들였다고 알렸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전날 오전 서부 해안 쪽 알마와시의 ‘인도주의 구역’을 확대하겠다며 라파 동부에 머무는 주민에게 이곳으로 대피하라고 공지했다. 대피령이 내려진 뒤 공습이 진행되자 수천명의 피란 행렬이 이어졌다. 이날 라파 동부에 비까지 내려 피란길이 더 혼란스러웠던 것으로 전한다.

피란민 아부 라데드는 로이터통신과의 채팅 대화를 통해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우려는 했었다. 어디로 가족을 데려가야 할지 봐야겠다”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피란민과 함께 있는 영국 의사 닉 메이너드는 “국경검문소 밖에서 2차례나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 약 100m 떨어진 곳에서는 다수의 총성이 이어졌다”며 “우리가 가자지구를 벗어날 수 있을지 매우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라파 동부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략적 요충지로 보고 있다. 하마스가 라파에 4개 대대를 주둔시키고 마지막 요새로 삼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의 목표인 하마스 전면 해체를 위해서는 라파에 은신한 하마스 수뇌부를 제거하는 게 필수라고 간주한다. 이스라엘군 측 관계자는 AP통신 등 언론에 “하마스가 라파에 있고 그들에게 작전능력이 있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마스는 지난 5일 가자지구 북부 분리장벽 근처 이스라엘 검문소를 로켓으로 공격해 3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사망했는데, 이것이 라파 지상전에 대한 결단을 촉발했음을 시사했다. 당시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16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보복 공습 직후 성명을 통해 “인질 석방을 포함한 전쟁 목표를 달성하고 하마스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 위해 라파에서 군사작전을 진행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차량에 매달려… 목숨 건 피란길 6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 대피령이 내려진 가운데 피란민들이 차량에 매달려 가자지구 북쪽의 칸유니스로 이동하고 있다. 칸유니스=로이터연합뉴스

가자지구 휴전협상은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지상전이 본격화하면 단기간에 협상이 타결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날 이스라엘의 공습은 하마스가 아랍 중재국인 이집트, 카타르가 제시한 가자지구 휴전안을 수용한 직후에 이뤄졌다.

 

하마스는 성명을 통해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엘 하니예 정치국장이 카타르 총리, 이집트 정보국장에게 휴전안을 수용한다는 결정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성명을 내고 “하마스 제안이 이스라엘의 핵심 요구를 충족하기에 크게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제사회의 비판을 의식한 듯 “수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을 극대화할 노력의 하나로 이집트에 고위 대표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하마스가 수용하기로 한 휴전안이 세 단계로 이뤄져 있다고 보도했다. 첫 번째 단계에선 42일간 휴전을 하는 대가로 여성과 노인, 치료가 필요한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등을 석방한다. 이스라엘은 인질 33명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양측이 더 많은 인질을 석방하는 등 ‘지속 가능한 평온’(sustainable calm)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 세번째 단계에서는 향후 3∼5년에 걸친 가자지구 재건 계획을 실행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NYT는 ‘지속 가능한 평온’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놓고 양측이 입장 차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이 문구가 이스라엘군의 완전 철수와 영구 휴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연기 자욱한 가자지구 라파 7일(현지시간) 연기를 내뿜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이스라엘군 탱크가 진입해 서 있다. 라파=AFP연합뉴스

익명을 요구한 이스라엘 관리는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하마스의 휴전 제안에 이스라엘은 놀랐다”며 “관리들이 이 제안의 진의를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목표가 하마스 수뇌부 전면 해체인 만큼 휴전협상 타결을 지연하고 일단 라파 지상전을 강행한 뒤 협상 타결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라파는 가자지구 남동부 끝자락에서 각각 이집트, 이스라엘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전쟁 전에는 27만5000여명이 거주했던 곳이다. 이스라엘이 7개월째 하마스를 상대로 전쟁을 이어가면서 지금은 봉쇄와 폭격에 떠밀려간 피란민의 텐트촌이 밀집해 있다. 유엔은 이번 전쟁으로 170만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들 중 대부분인 140만명 이상이 위생과 의료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라파의 텐트촌에서 살고 있다. 이에 라파에서의 지상전은 돌이킬 수 없는 인도주의적 위기를 불러오는 대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