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명문대 의대생이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어제 경찰에 구속됐다. 고교 최상위권 학생들만 입학이 가능한 의대 재학생이 벌인 일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성적과 대학입시를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 교육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청소년기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경찰에 따르면 25세 남성 최모씨는 엊그제 서울 강남역 사거리 부근 15층 건물 옥상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에게 여러 차례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조사에서 최씨는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사전에 대형마트에서 흉기를 사들이는 등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는 중이다. 놀라운 것은 최씨가 몇 해 전 수능 만점을 기록한 우등생이란 점이다. 의대 입학 후로는 인터넷 강의 사이트 등에 출연해 공부 잘하는 비결을 전수하는가 하면 “이국종 교수처럼 훌륭한 외과 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포부도 밝혔다고 한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직업인 의사가 목표라는 청년이 되레 남의 생명을 빼앗았다니 그저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결코 의사가 되어선 안 될 사람이 의대에 합격한 것 자체가 우리 교육의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마 최씨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칭찬을 듣고 모범생으로 통했을 것이다. 수능 만점을 받고 의대에 들어간 뒤로는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법하다. 우리 사회가 성적과 입시 위주 교육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학생들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전 올바른 인격부터 갖추도록 하는 데 소홀했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그 어떤 직업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의술은 인술(仁術)’이라는 말이 왜 생겼겠는가. 의대생 정원의 20%를 응급구조 대원, 중환자실 간호사, 요양병원 간호조무사 등 의료 분야 경력자 중에서 뽑는 독일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최씨의 범행에 대해 경찰은 데이트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데이트폭력은 해마다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1만3900여명이 가해자로 입건됐다. 하지만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 이는 2%가 조금 넘는 310명에 그쳤다. ‘남녀 간 사생활 영역’이라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져 온 탓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은 데이트폭력 가해자에 대해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삼고 형량도 대폭 올려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