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도네시아(인니)와 공동개발 중인 초음속 전투기 KF-21의 개발분담금을 1조6000억원에서 6000억원으로 낮춰 달라는 인니의 제안을 사실상 수용했다. 방위사업청은 어제 “인니 측이 사업 종료 시점인 2026년까지 6000억원을 납부하겠다고 분담금 조정 제안을 해왔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인니가 납부한 분담금은 약 3800억원으로 추후 2200억원만 더 내고 거래를 마치겠다는 것이다. 국산 무기 공동개발 계약에선 초유의 일이어서 충격적이다.
당초 인니는 2016년 1월 자국에서 KF-21 48대를 면허 생산하는 조건으로 전체 개발비의 20%인 1조6000억원을 개발이 완료되는 2026년 6월까지 부담하고 관련 기술을 이전받기로 했다. 그러다가 작년 말 분담금 납부 기한을 2034년까지로 8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하자 분담금을 대폭 줄이는 대신 2026년까지 내겠다고 수정 제안한 것이다. 정부가 인니 제안을 받아들이면 KF-21 전체 개발비 8조8000억원 중 1조원을 정부 예산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비판을 의식한 방사청은 어제 KF-21 개발 과정에서 비용 절감이 이뤄져 개발비가 7조6000억원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개발비를 뻥튀기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1조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줄일 수 있다는 건지 납득이 쉽지 않다.
이번 계약 위반은 국가 간 합의를 마음대로 뒤집은 인니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그렇더라도 이 문제는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불거졌다. 5년이 지나도록 인니에 끌려다닌 우리 정부도 책임을 벗기 힘들다. 지난해 11월 인니의 분담금 미납 방침이 확인된 뒤에도 정부는 공식적인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인니와의 공동개발이 정권 치적쌓기용으로 변질된 탓 아니냐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심지어 올해 1월 인니 연구원이 KF-21을 개발 중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관련 기밀 자료를 빼돌리다 적발되기까지 했다. 인니가 필요한 핵심기술을 빼돌린 뒤 분담금 줄이기 시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 수밖에 없다. 마침 어제 KF-21이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미티어’(Meteor)의 첫 실사격에 성공했다. KF-21의 원거리 탐지 및 격추 능력이 증명된 것이다. 수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기 계약 위반이 반복되면 K방산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서둘러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사설] 인니 ‘KF-21’ 분담금 펑크, 무기개발 계약 위반 재발 막아야
기사입력 2024-05-08 23:24:05
기사수정 2024-05-08 23: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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