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논의한 회의록 등 근거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기로 한 10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2천명 근거'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 "갑자기 등장한 숫자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의사들은 자신들과 논의 없이 갑작스레 튀어나온 숫자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이처럼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증원 논의'의 정의(定義) 자체에 대한 견해 차이가 배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尹 "2천명 갑자기 발표한 것 아니다"…'충분한 논의' 강조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2천명 증원에 대해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음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어느 날 갑자기 의사 2천명 증원이라고 발표한 것이 아니라, 정부 출범 거의 직후부터 의료계와 이 문제를 다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2천명 증원'을 둘러싸고 의정 갈등이 해소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데다, 법원의 근거 자료 제출 요구로 증원 논의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의대 2천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는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이달 10일까지 정부 측 증원 근거를 제출받은 뒤 결론을 낸다는 방침이다.
심문조서를 보면 재판부는 2천명 증원 규모를 도출한 근거를 설명할 관련 회의자료나 녹취록 등을 제출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송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에 따르면 재판부는 '2천명'이라는 숫자를 의료계와 정부 사이 충돌의 핵심으로 보고, 관련 내용이 논의된 회의 자료를 요구했다고 한다.
정부는 2천명 증원 결정이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이뤄졌음을 강조한다.
의협과 지난해 1월 의료현안협의체를 꾸린 뒤 28차례 회의를 열어 의사 수 부족과 증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으므로, 정부로서는 '할 만큼 했다'는 얘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은 "총 28차례 개최된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여러 차례 의사 증원 방안을 논의했으나, 의협에서는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만 반복했다"고 밝혔다.
◇ 의사들 "우리와 논의 안 했다"…'2천명 숫자'에 초점 맞춰 공세
정부는 의료계와 논의를 통해 의대 증원을 결정했다고 누누이 강조하지만, 의료계에서는 '2천명'이라는 숫자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부터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의교협은 "의대 증원 찬반 여부, 증원한다면 몇 명을 증원할 것인가 등에 대한 치열한 논의와 표결 등을 거쳐서 2천명이라는 숫자가 결정됐어야 한다"며 이 과정을 기록한 회의록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의대 증원을 결정한 지난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에서 2천명이라는 숫자가 의료계와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는 얘기다.
이처럼 입장이 엇갈리는 것은 서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는 28차례에 대한 의료현안협의체 등을 통해 '의대 증원' 자체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2천명'이라는 증원 규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으므로 실질적 논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적잖은 교수들은 의대 증원을 0명으로 돌리자는 게 아니라, 정부가 왜 2천명으로 정했는지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2천명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설득하지 않는 한 현 상황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이 이렇게 평행선을 달리면서 사태의 향방을 결정지을 분수령은 이달 중순께로 예상되는 법원의 '항고심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정부의 2천명 증원은 사실상 '무산'되고, 본안 소송 결론이 나기 전까지 각 의대는 기존 모집인원을 유지해야 한다
반면에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하거나 기각하면 2천명 의대 증원은 '최종 확정'의 길을 걷게 된다.
2천명 증원을 받아들이는 법원 결정이 내려지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이달 말까지 의대들의 내년도 모집 인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해 각 대학에 통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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