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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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딛고 검정고시 합격증… “사회복지사 꿈”

59세 정미경씨 초졸 검정고시
하루 7시간 EBS ‘열공’해 통과
“손녀 앞 당당… 대학도 진학할 것”

“육십 나이에 무슨 공부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세 살 된 우리 손녀한테 부끄러운 할머니가 되지 않으려면 해야겠더라고요.”

2024학년도 서울 제1회 초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정미경(59·사진)씨는 9일 적지 않은 나이에 검정고시를 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정씨는 어릴 적 뇌성마비가 오면서 초등학교 5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공부를 더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평생 마음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2년 전 큰딸이 결혼하면서 정씨를 응원하는 가족이 한 명 더 늘었다. 정씨는 “사위랑 딸이 용기를 북돋워 주고, 공부하라고 지난해 12월엔 태블릿PC도 사다 줬다”고 했다. 그 뒤로 아침 먹고 2시간, 점심 먹고 7시간씩 EBS 강의를 들었다.

정씨는 지난달 6일 감독관 두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시험을 치렀다. 이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경우 ‘찾아가는 검정고시 시험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응시자가 자택 혹은 복지관에서 시험을 볼 수 있도록 2018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제도다. 이번 검정고시에서는 정씨가 이 서비스를 이용한 유일한 응시자다.

정씨는 시험을 치른 직후부터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도 ‘5월9일 합격을 기약하며’로 바꿔 놨다. 합격 소식을 들은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2012년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2수 만에 땄다는 그는 단번에 초등 검정고시에 합격한 자신이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정씨는 이날부터 곧바로 중등 검정고시 준비에 돌입했다. 8월 예정된 2024학년도 2회 검정고시에서 합격하는 게 목표다. 그는 “고등 검정고시도 보고, 수능에도 응시할 것”이라며 “지금 생각으로는 대학까지 가고 싶다”고 했다. 전공도 사회복지학과로 이미 정해 놨다. 정씨는 “저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면 보람될 것 같다”며 “더 유능한 사람이 돼서 사회에 보탬에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회복지학 전공은 2014년부터 서울 강서구에 있는 강서뇌성마비복지관에서 4년간 일하며 정한 꿈이다. 정씨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활용해 복지관 내 카페에서 커피 내리는 일을 했다. 허리가 안 좋아지면서 더는 복지관으로 출근하지 못하게 됐지만 정씨는 언젠가 사회복지사로 다시 그곳으로 출근할 날을 그리고 있다.

“공부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저처럼 도전하는 분들께 같이 계속 도전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이번 서울 초·중·고 졸업 학력 검정고시의 최고령 합격자는 각각 박종희(86), 이재성(82), 정월명(84)씨였다. 최연소 합격자는 각각 서지효(11)양, 김선혁(12)군, 손예준(12)군이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