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을의 영주였는데 ‘왕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예언에 현혹돼 욕망의 끝을 향해 가는 인물입니다. 마지막에 죽음을 앞두고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라며(후회하며) 뒤를 돌아보지요. 요즘에도 통할 얘기입니다.”
7월 개막할 연극 ‘맥베스’에서 멕베스 역으로 무대에 서는 황정민(54)이 작품 속 맥베스를 이렇게 소개했다. 황정민은 10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맥베스는) 비유하면 구청장인데 대통령이 될 거란 말에 탐욕의 끝으로 내달아 결국 자기 무덤을 파는 인물”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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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오셀로’, ‘리어왕’과 함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1564∼1616)가 쓴 4대 비극 중 가장 마지막 작품인 ‘맥베스’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 운명이 빚어내는 비극을 다룬다.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에 따라 국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차지한 뒤 서서히 파멸해가는 이야기다.
황정민은 ‘리차드3세’(2018∙2022년)에 이어 셰익스피어 작품으론 두 번째 타이틀롤(작품의 제목과 이름이 같은 주인공)을 맡았다. 그는 연극을 놓지 않는 이유에 대해 “타이틀롤을 맞는 게 부담이 되나 연극 작업을 할 때가 개인적으론 힐링하는 시간이고 무대에선 오롯이 배우로서의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차드3세’와 ‘오이디푸스‘(2019년)에 이어 ‘맥베스’까지 잇달아 고전극을 선택하는 건 “의미가 굉장히 함축적이고 후세대들이 재해석하거나 공부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라며 “(신인 때) 기본을 알고 배울 수 있도록 해준 고전극이 정말 좋다는 걸 아는데 요즘은 별로 없어서 당분간 고전극을 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대학로 ‘학전’ 소극장이 지난달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한 황정민은 “제가 지금도 허투루 살지 않는 원동력이 ‘학전’이다. 기본적으로 겸손함 등 (배우로서의 자질을 ‘학전’에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학전’은 없어졌지만 김민기 선생님의) 좋은 정신을 잘 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샘컴퍼니 소속 배우들을 열심히 뒷바라지 하는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는 1995년 극단 ‘학전’ 1기 단원으로 김민기(73) 대표와 인연을 맺었고,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와 함께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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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의 아내로 남편이 왕을 죽이고 권좌에 앉도록 부추기는 레이디 맥베스 역은 김소진(45)이 맡았다. 출연 배우 중 유일한 여성이다. 김소진은 “맥베스가 비극적 파멸로 이르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라며 “자신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행동하는 강한 의지와 그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 죄책감 등 (레이디 맥베스의) 복잡한 감정 변화를 관객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연기할 것”이라고 했다.
맥베스의 충직한 부관이었지만 아들을 지키기 위해 맞서다 살해 당한 뱅코우 장군은 인기 드라마 ‘주몽’으로 유명한 송일국(53)이 연기한다.
믿었던 맥베스의 칼에 죽는 왕 덩컨 역은 송영창(66)이, 가족의 복수를 위해 맥베스와 맞서는 맥더프 역은 남윤호(40)가 각각 맡는다. 남윤호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 분) 세력의 쿠데타를 저지하려는 이태신(정우성 분) 수도경비사령관의 오른팔인 강동찬 역으로 열연했다. ‘맥베스’에서도 황정민과 대척점에 선 인물을 연기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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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10회 그단스크 셰익스피어 페스티벌에서 대상을 받은 양정웅(56)이 연출한다. 양정웅은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마지막에 쓰여) 완성도가 높은 ‘맥베스’는 브레이크 없는 욕망이나 쾌락에 손을 대는 순간 헤어나오지 못한 채 끝으로 치닫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상실감과 죄책감, 양심 등 문제를 인간의 원형으로 잘 집어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품을 준비하면서 우리 현대인도 (각자) 욕망과 죄책감에서 얼마나 허덕이는지 공감했다”며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대사와 마지막 비극의 맛을 잘 살리면서 ‘맥베스’에 담긴 상징적인 인간 본성들을 표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은 7월13일부터 8월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