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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수호신 개양할미 전설 깃든 변산반도 적벽강 노을길을 걷다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부안 변산반도 적벽강 노을길 서해 3대 낙조 명소/몽돌·절벽·소나무·푸른바다 어우러지는 절경 선사/죽막마을엔 서해 수호신 개양할미의 전설 깃들어/내소사 전나무숲길 지나면 천년 할머니 느티나무도 만나

 

적벽강.

차르르, 차르륵. 몽돌이 노래한다. 푸른 날씨만큼 쾌청한 목소리로. 물살에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면서도 불평 하나 없다. 억겁의 세월, 파도와 바람이 모난 곳을 깎고 또 다듬었기 때문인가 보다. 둥글둥글한 돌멩이들 해변에 차곡차곡 쌓인 풍경은 싫은 소리 한 번 않는 성격 좋은 사람 품에 기댄 것처럼 푸근하다. 채석강과 적벽강 사이 이름 없는 작은 해변. 이른 아침부터 바지락 캐는 할매들 틈에서 고르고 골라 나를 닮은 돌멩이 하나 주워 든다. 마음에 든다. 햇볕 잘 드는 창가에 ‘반려돌’로 곱게 모셔 놓고 마음에 모난 곳 생길 때마다 들여다봐야지. 너처럼 둥글게, 그렇게 살자 약속하며.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세계일보 여행면. 편집=김창환 기자

◆‘3대 낙조 맛집’ 적벽강 가보셨나요

 

‘적벽강 노을길’.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 적벽강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하늘과 바다를 닮은 파란색 글자 포토존이 여행자를 맞는다. 닭이봉에서 출발해 채석강~격포해변~죽막마을 후박나무군락(수성당)~적벽강~작은당자연관찰로~반월쉼터~하섬 전망대~성천항~고사포해변으로 이어지는 적벽노을길은 10.4㎞에 달한다. 특히 적벽노을길 3코스에 속한 적벽강은 충남 태안군 안면도 꽃지해변, 인천 강화도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 3대 낙조로 손꼽힌다. 해질 무렵이면 노을빛을 받은 사자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며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황홀한 풍경을 선사한다.

 

적벽강 노을길.
적벽강.

둥근 자갈이 깔린 해변에는 연인이 앉아 수평선을 지그시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인다. 또 다른 연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돌탑 쌓기에 한창이다. 이를 지켜보던 한무리 청년들은 시기 질투가 났나 보다. 갑자기 물가로 달려가더니 납작한 자갈 골라 누가 더 멀리 가는지 물수제비뜨기 내기를 하며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산통을 깬다. 청년의 무성한 머리숱마냥 푸른 소나무가 빽빽한 적벽강 절벽은 바다를 향해 우아하게 뻗었고 그 너머 절벽들과 멀리 하섬까지 겹겹이 펼쳐지는 풍경은 예쁜 수채화다. 딱히 뭘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앉아서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귓불을 스치는 부드러운 봄바람과 파도가 들려주는 몽돌의 연주를 가만히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번잡한 머릿속은 비워진다.

 

적벽강.
적벽강 돌탑쌓기.

채석강과 적벽강 일대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퇴적층을 강한 파도가 조금씩 깎아 마치 수만권의 책을 가지런히 올려놓은 듯한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놓았다. 죽막마을 남쪽은 채석강, 북쪽은 적벽강으로 구분한다. 채석강은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 강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고 전해지는 중국 채석강과 비슷해 이런 이름이 붙였다. 적벽강은 해안 풍경이 아담해 연인들이 좋아한다. 중국 시인 소동파가 노닐던 중국 적벽강과 경관이 닮았다는데 절벽과 해변의 돌들이 적갈색을 띤 모습이 인상적이다. 현무암 속에 붉은색 암석 파편들이 박힌 모습이 마치 후추를 뿌린 모양이라 ‘페퍼라이트(peperite)’로 불린다. 뜨거운 용암이 아직 굳지 않는 퇴적물을 뚫고 들어가면서 이런 독특한 풍경을 만들었다. 채석강과 적벽강 일대는 변단층, 습곡, 관입구조, 파식대, 해식애, 해식동굴 등 다양한 지질이 펼쳐져 2023년 5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죽막마을 조릿대 숲길.
죽막마을 수성당.

◆서해 수호신 개양할미의 전설

 

적벽강을 내려다보는 죽막(竹幕) 마을 높은 언덕에선 수성당을 만난다. 대나무처럼 방풍림 역할을 하는 조릿대가 무성한 오솔길을 지나 언덕 꼭대기에 오르자 제를 지내는 돌탑과 수성당이 나란히 바다를 바라본다. 수성당은 개양할미, 또는 수성할미로 불리는 서해바다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개양할미는 딸 8명을 낳아 7명은 시집을 보냈고 지금도 막내딸과 서해바다를 지키고 있단다. 서해바다를 걸어다녀도 발등까지만 물이 찰 정도로 아주 키가 큰 개양할미는 깊은 바다를 흙이나 모래로 채우고 파도가 치는 위험한 곳은 별도의 표시를 해서 어부를 도왔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죽막마을 수성당.
개양할미(가운데)

지금도 어부들은 개양할미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수성당에서 매년 음력 1월14일 제사를 지낸다. 수성당 안에는 딸 8명을 거느린 개양할미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품에 안고 있는 딸이 막내다. 유명한 전래동화 효녀 심청이의 배경이기도 하다. 격포해변과 위도 중간쯤인 14㎞ 지점에 아주 작은 임수도가 떠 있는데 효녀 심청이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석에 몸을 팔고 뛰어든 임당수가 임수도로 전해진다.

 

변산반도생태탐방원.
변산반도생태탐방원 앞 해안.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변산반도생태탐방원에 숙소를 정하면 해설사와 함께 이런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적벽강 일대를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숙소를 예약하면서 상시프로그램 ‘다 같이 돌자, 죽막마을 한바퀴’를 신청하면 된다. 오전 2시간 동안 입담 좋은 해설사가 생태탐방원~후박나무군락지~수성당~적벽강을 돌며 명소들을 안내한다. 또 재미있는 미션을 수행하며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고 생생한 지질의 역사도 공부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가기 좋다. 오후에는 생태탐방원에서 변산반도국립공원의 특별한 지질암석 이야기와 해양생물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2시간 동안 진행된다. 매년 1t에 달하는 유리쓰레기, 씨글라스가 해양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알리기 위해 씨글라스를 활용한 공예체험도 진행된다.

새만금환경생태단지 유채꽃밭.

 

◆천년 느티나무 만나는 내소사

 

2022년 6월 문을 연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새만금환경생태단지는 무려 24만평에 달한다. 워낙 넓어 지금도 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나가듯, 완성도를 높여가는 곳이다. 대자연초화원으로 들어서면 예쁜 노란색 유채꽃이 반긴다. 꽃밭에 작은 오솔길과 포토존이 마련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사진이 잘 나온다. 바람개비언덕도 ‘SNS 맛집’. 김광석 노래 제목에 따온 예쁜 ‘바람이 불어오는 곳’ 조형물 뒤로 알록달록 바람개비가 봄바람을 맞고 힘차게 돌아간다. 그 너머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바람처럼 쌩쌩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 코스와 다양한 트레킹코스가 마련돼 봄날을 만끽하기 좋다.

 

내소사 전나무숲길.

변산반도 여행에서 내소사를 빼놓을 수 없다. 강원 평창 오대산 월정사, 경기 광릉 국립수목원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숲으로 꼽히는 아름다운 길과 천년 느티나무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서자 각종 먹거리가 즐비한 노점상들이 식욕을 자극한다. 복분자엿을 시작으로 모시송편, 야생 산두릅이 미각을 자극하더니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갓 만든 두부는 참지 못하고 식당으로 들어서게 만든다. 산채정식을 주문하자 깨소금 솔솔 뿌린 도토리묵을 시작으로 오징어계란파전, 메밀전병, 더덕구이, 생두부 등 푸짐하게 한상 차려진다. 꽤 많은 양이지만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내소사로 향한다.

 

내소사 천년 느티나무.
내소사 천년 느티나무.

일주문 앞에 서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는 ‘할아버지 당산나무’로 나이가 700살이다. 수령으로 미뤄 이곳에서 유명한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가 고려시대 즈음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신앙과 민간신앙이 결합된 독특한 복합신앙 형태를 띠며 지금도 매년 음력 1월14일 내소사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 일주문을 지나면 거침없이 솟아오른 우람한 전나무 700여 그루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 푸른 가지를 활짝 펼쳐 싱그러운 자연을 폐 속 깊숙하게 전한다. ‘모든 것이 소생한다’는 내소사 이름처럼 지친 심신을 최초의 상태로 리셋시키니 내딛는 발걸음이 한층 사뿐하다.

 

내소사 대웅보전앞 소나무.
내소사 대웅보전 꽃무늬 문창살.

숲이 주는 생명력을 피부로 느끼며 600m 길이 전나무 숲길을 끝까지 걸으면 무려 천년을 넘게 살고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를 만난다. 높이 20m, 둘레 7.5m에 달하는 엄청난 느티나무는 보는 순간 압도당할 정도로 신비롭다. 신성한 곳을 뜻하는 새끼줄을 두른 나무 주위를 많은 여행자들이 탑돌이하듯 돌며 소원을 빈다. 그들 틈에 끼어 올해도 별일 없이 보내게 해 달라고 작은 바람 살짝 얹는다. 3층석탑 앞을 지키는 운치 있는 소나무를 지나면 대웅보전이 등장한다. 연꽃, 국화, 모란, 해바라기 등 정교한 꽃무늬를 조각한 문창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633년(백제 무왕 34년) 창건된 천년고찰 내소사에선 국보 고려동종과 보물 영산회 괘불탱도 만난다.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