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늘은 세븐 클리어입니다. 팬텀(F-4 전투기)이 고별 순례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죠.”
지난 9일 경기 수원시 제10전투비행단에서 바라본 상공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8등분했을 때 지상으로부터 7단계까지 구름이 없다고 했다. 반세기 넘게 영공을 지킨 ‘하늘의 도깨비’ F-4E의 마지막 비행을 하늘이 응원하는 듯했다.
다음 달 7일 퇴역식을 앞둔 F-4E는 이날 49년 만에 고별 국토순례비행에 나섰다. 취재진은 조종복과 장구를 착용하고 후방석에 탑승해 마지막 비행을 체험했다. 비행에 나선 4대에는 필승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1975년 방위성금으로 구매한 F-4D 5대로 구성된 편대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부여했던 명칭이다. 당시 북한 김일성의 중국 방문, 베트남 공산화 등 안보 위기가 현실화하자 국민들은 방위성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인 163억원 중 71억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이들은 서울 등 12개 주요 도시 상공을 순례비행하며 국민에게 신고식을 했다. F-4는 1969년 도입된 후 1994년 KF-16 전력화 전까지 공군의 주력 전투기로 활약했다. 지금은 대부분 퇴역하고 F-4E 10여대만 운용하고 있으며, 이 중 6대가 수원 기지에 있다.
고별비행에 나선 4대 중 2대에는 한국 공군 F-4의 옛 도색이었던 정글 위장 무늬와 연회색 도색을, 나머지는 현재의 진회색 도색으로 비행했다. 동체 측면에는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라는 기념 문구와 함께 F-4를 상징하는 스푸크(spook·유령)가 그려졌다.
스푸크는 F-4 최초 개발 당시 기술도면 제작자가 항공기의 후방 모습을 보고 착안해 그린 캐릭터로서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았다. 왼쪽 스푸크는 공군의 상징인 빨간 마후라를 매고 가슴에 태극 무늬를 새겼다. 오른쪽 스푸크는 조선시대 무관의 두정갑(頭釘鉀)을 입고 공군에서 F-4E만이 운용할 수 있는 AGM-142 팝아이 공대지 미사일을 들었다.
편대를 이끄는 1번기는 전·후방 조종사 모두 베테랑으로 편성됐다. 2~4번기 후방석엔 기자들이 탑승했다. 무기통제사로 불리는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운용 △좌표 입력 △공대지 레이저 유도 폭탄(LGB) 등 무장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후방석 조종사로 830시간을 비행한 제11전투비행단 부단장 이성진 대령은 “AGM-142를 비롯해 최대 8480㎏이라는 무장을 탑재할 수 있었기에 F-4가 뜨면 북한이 아예 비행기 자체를 띄우지 않았다”며 “후방석은 좁은 조종석, 제한된 시야, 비행 중 지속적으로 레이더 및 계기판 관측 등에 몰두해야 하는 것 때문에 멀미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F-4E는 오랜 시간 임무를 수행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후방석에 앉아 착용한 안전벨트의 가죽은 낡았고, 쇠붙이로 된 결속부는 닳아 있었다. 전투기의 계기판과 백미러도 때가 탔다. 고별비행이란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활주로를 마주한 F-4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기체가 이륙하는 데 걸린 시간은 8초. 10시 정각에 필승편대의 고별 국토순례비행이 시작됐다. 필승편대는 역 V자 모양인 핑거팁(손가락을 붙였을 때 검지부터 소지까지의 삼각형 모양) 대형으로 편대비행했다. 촬영을 위해 F-15K 2대도 편대에 합류했다.
필승편대는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기지가 있는 평택과 독립기념관이 있는 천안 상공을 날았다. 공군의 핵심 거점인 충주·청주기지 상공을 통과한 편대는 과거 F-4가 활약한 동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F-4는 1983년 Tu-16 폭격기, 1984년 Tu-95 폭격기 등 동해안 일대에 나타난 옛소련 전력 차단에 나선 바 있다.
한국 중공업과 무역 성장을 이끈 포항·울산·부산·거제를 통과한 편대가 대구로 기수를 돌리고자 남에서 북으로 급선회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실제 폭격 훈련에서 조종사들이 극복했을 역경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수원 기지 이륙 후 1시간 46분이 지나서야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 착륙했다. 대구기지는 1969년 8월29일 미국이 공여한 F-4D 인수식이 열린 곳이다. 한국은 당대 최강 전투기였던 F-4D의 4번째 운용국이 되면서 북한 공군력을 압도할 수 있었다.
재급유를 마친 편대는 국산 KF-21을 개발하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위치한 경남 사천으로 향했다. 사천 상공에서는 KF-21 2대가 합류했다. 한국 전투기의 과거(F-4E)와 현재(F-15K), 미래(KF-21)가 한데 모여 비행하는 모습이 펼쳐지면서, 한국 공군의 세대교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순간을 맞이했다. 편대 후방에서 비행하던 KF-21은 여수 상공부터는 전방으로 이동하며 앞으로 F-4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 상공까지 동행하던 중 “고생 많으셨습니다. 조심히 복귀하십시오”라는 KF-21 조종사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F-4E 탑승자는 물론 55년간 임무를 마치고 수원기지로 돌아가는 F-4에게 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KF-21은 우측으로 급선회하며 이탈했고, F-4E는 플레어(섬광탄)를 쏘며 화답했다. 편대는 가거도를 거쳐 서해안을 따라 미 제8전투비행단이 주둔하는 군산기지로 향했다가 수원기지로 복귀하며 3시간여에 걸친 국토순례 비행을 마무리했다.
비행에 참여한 제10전투비행단 제153전투비행대대 박종헌 소령은 “국민의 성금으로 날아올랐던 필승편대의 조국 수호 의지는 불멸의 도깨비 팬텀(F-4)이 퇴역한 후에도 공군 조종사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