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담배 끊으면 살 찐다" 속설, 사실일까 [건강+]

흡연자가 살 덜 찌고 금연시 살찌는 이유
"비흡연자보다 덜 먹고 덜 건강한 식습관 탓"
#50대 직장인 김모씨는 올 들어 5개월째 금연을 하고 있다. 김씨는 금연을 통해 정신이 맑아지고 아침마다 들끓던 가래도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좋은 현상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체중이 2kg 가량 불어 몸이 무거워졌다. ‘담배를 끊으면 살이 찐다’는 속설이 맞는 걸까. 김씨는 “담배를 끊으니 음식이 전보다 맛있게 느껴진다”며 “수시로 간식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담배를 끊으니 살이 쪘다’고 말하거나, 반대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 중에는 유독 마른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이처럼 흡연자가 살이 덜 찌거나 금연할 때 체중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식사량과 식습관의 차이 때문이라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영국 러프버러대와 레스터대 연구팀은 13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린 유럽비만연구협회(EASO) 학회(ECO)에서 영국 성인 8만여 명을 대상으로 흡연과 섭식 행동의 관계를 분석, 흡연자가 비흡연자보다 식사량이 적고 건강한 식습관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가 흡연자가 금연 후 체중이 증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금연을 시도하는 흡연자에게 영양 및 체중 관리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영국 의료 자선단체 너필드헬스(Nuffield Heath)가 2004~2022년 건강평가 프로그램을 통해 수집한 18세 이상 8만3781명의 데이터를 이용해 흡연과 식습관 및 식이 행동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참가자 중 흡연자는 6454명, 비흡연자는 7만7327명이었다.

 

참가자들은 나이, 성별, 사회경제적 지위, 흡연 여부, 평소 식습관 등에 관한 설문지를 작성했고, 체질량지수(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 ㎏/㎡)도 측정했다.

 

분석 결과 흡연자는 식사를 거를 가능성이 연령·성별·사회경제적 지위 등 요소를 배제해도 비흡연자보다 2.16 배나 높았고, 3시간 이상 아무것도 먹지 않는 행동의 비율도 비흡연자보다 50%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에 '흡연구역' 안내판이 서 있다. 연합뉴스

또 흡연자는 식사 사이에 간식을 먹는 확률이 비흡연자보다 35%, 보상 또는 기분전환으로 음식을 먹는 확률은 19%, 지루함을 달래려 음식을 먹는 확률은 14% 낮았다.

 

식사 사이에 또는 디저트로 단 음식을 먹을 확률도 8~13% 낮았다.

 

연구책임자인 러프버러대 스콧 윌리스 박사는 이 연구 결과는 흡연이 섭취량 감소와 튀긴 음식 섭취, 소금·설탕 첨가 등 식단의 질 저하 등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며 금연 때 흡연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체중 증가의 원인을 밝히고 그에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흔히 체중 증가 우려를 꼽는다. 하지만 흡연이 오히려 복부 비만, 특히 심혈관 질환, 당뇨병, 치매 위험 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내장 지방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학 게르만 D. 카라스크빌라 교수팀은 유럽인을 대상으로 흡연에 영향을 미치는 단일 유전자 변이를 이용해 흡연과 복부 비만 사이의 관계를 분석,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흡연 습관 및 체지방 분포와 관련된 유전자를 확인하고, 이 유전자 정보를 사용해 흡연 관련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이 체지방 분포가 다른지 조사했다. 마지막으로 흡연과 체지방 분포 간 연관성이 흡연이 아닌 음주나 사회경제적 배경 등 다른 요인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닌지 검증했다.

 

그 결과 흡연과 관련된 유전적 요인은 피부 아래의 피하지방보다는 복부 장기를 감싸고 있는 심부 지장인 내장 지방 조직의 증가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카라스크빌라 박사는 “허리-엉덩이 비율 측정 결과 흡연이 복부 지방을 증가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증가하는 지방의 유형이 피하지방보다는 내장 지방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k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