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조리원에 대한 단상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난 조리원이라는 곳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서울 강남에는 2주 이용료가 1000만원이 훌쩍 넘어가는 초호화 조리원이 있다고 들었다. 팬데믹으로 예전만 못해졌지만 좋은 ‘조동’(조리원 동기)을 만나기 위해 무리해서 강남 지역의 조리원에 입소하는 일도 있다고 하는 등 부정적인 얘기만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12일, 딸 하진이가 태어났다. 30대 후반에 늦깎이 아빠가 된 것이다. 제왕절개로 하진이를 낳은 아내는 5박6일 동안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고, 곧바로 아내, 하진이와 함께 조리원에 입소했다. 아내와 조리원에서 2주간 지내면서 조리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180도로 변했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

조리원은 꼭 필요한 곳이었다. 출산 전 나와 아내는 주변 지인들의 조언과 유튜브 등을 통해 출산 후 신생아 육아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신생아를 곧바로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갓 산고를 겪은 산모들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산후 곧바로 육아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어렵다.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아내만 봐도 조리원 입소 초기까지 거동조차 불편할 정도였으니까.

이런 초짜 부모들에게 조리원은 ‘육아 유예 시간’을 제공해 주는 곳이었다. 24시간 내내 하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케어해 주고, 산후 좋은 것을 챙겨 먹어야 하는 아내에겐 양질의 식사와 간식, 쉴 공간과 시간을 제공해 줬다. 하루 2시간은 ‘모자동실’ 시간이라고 해서 하진이가 우리 방에 왔다. 모자동실 시간에 하진이에게 분유를 먹이고 돌보면서 육아를 간접적으로나마 체험도 했다. 2주 뒤 퇴소 땐 조리원 선생님들이 하진이의 특성을 파악해 알려주기도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직업병’ 탓인지, 국가가 운영하는 조리원이 늘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흘렀다. 우리가 묵은 조리원은 안산에서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춘 곳으로 알려졌는데, 가격은 2주에 380만원이었다. 내 한 달 월급 대부분을 쏟아넣어야 하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이를 부담할 형편은 됐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쌍둥이가 입소할 경우 그 가격은 68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인공수정 등으로 인해 쌍둥이 출산이 예전보다 많아졌음을 감안하면 조리원 가격 감당이 여유로운 부부는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2021년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조리원 평균 가격은 243.1만원. 국가에서 출산 시 나오는 ‘첫 만남 이용권’ 등을 이용해 조리원 입소 비용으로 일부 충당할 수 있지만, 아기를 낳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첫 만남 이용권 등의 보조비를 조리원 입소에 대부분 쓰면 결국 자비로 육아용품 등을 구입해야 한다. 결국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신생아 부모들도 가격에 구애받지 않고 조리원에 입소할 수 있도록 사설 조리원과 비교해 뒤떨어지지 않는 시설을 갖춘 국립 혹은 도립, 시립 조리원이 많아져야 한다.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 2023년 0.72명으로 더 떨어졌다. 매년 출산율 제고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고 있다는데 출산율은 더 떨어지기만 한다. 초기 출산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조리원을 어느 부부도 부담스럽지 않게 만들기. 이게 예산을 제대로 쓰는 것 아닐까라고 제언해 본다.


남정훈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