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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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결정 앞두고… 의·정 ‘2000명 근거’ 장외 충돌

“과학적 근거 없이 외부서 정해
보정심서 일방 통보” 의료계 주장

정부 “회의록 공개 재판 방해 의도
3개 연구보고서의 공통된 결론”

의대 증원 집행정지 여부에 대한 법원 결정이 임박하면서 ‘2000명 증원의 근거’를 두고 의·정 간 장외 공방이 치열하다. 의료계는 정부가 법원에 낸 회의록 등을 공개하며 “2000명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고 외부에서 누군가 결정한 숫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회의록 공개에 대해 “여론전을 통해 재판부를 압박해 공정한 재판을 방해하려는 의도”라며 “부족한 의사 1만명을 채우기 위해 5년간 2000명을 증원하는 것은 단순 산수”라고 반박하고 있다.

치열한 신경전 김종일 서울의대교수협의회장이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입학정원 증원의 근거 및 과정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정부 답변 검증 결과를 요약해 발표하고 있다. 김 회장은 정부가 근거로 제시한 3개 연구보고서에 관해 “2000명 증원의 근거로 활용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했다. 뉴시스

의료계 측 법률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법무법인 찬종)는 13일 정부가 법원에 제출한 각종 자료와 증원 규모를 결정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과 보도자료 등 52건을 공개했다.

 

2000명이 처음 언급된 건 알려진 대로 지난 2월6일 열린 보정심 회의였다. 회의록을 보면 A위원은 회의 초반부에 2000명이 언급되자 “일정 규모 증원은 공감하지만 (2000명은) 굉장히 충격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대규모로 늘리면 폐교된 서남의대를 20개 이상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B위원도 “2000명은 너무 많다”고 했고, C위원은 “오늘 회의가 끝난 뒤 2000명이라고 발표될 것인데 보정심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따졌다. 보정심 위원장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3분 중에 4분이 이견을 제시했지만 대체로 동의하시는 걸로 생각이 된다”며 “다른 의견이 없으면 복지부 안대로 의결하고자 한다”고 회의를 마무리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와 대한의학회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제출한 자료 어디에도 ‘2000명’에 대한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은 “통계학, 보건정책전문가 등 교수 20명과 자료를 검증하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도대체 2000명은 어디서 나온 숫자냐”고 꼬집었다. 이병철 변호사도 “2000명은 ‘외부’에서 누군가가 결정한 숫자이고, 이를 복지부 장관이 보정심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요식절차만 거친 후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2000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없고,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도 부재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법원에 제출한 자료를 공개한 의료계에 자제를 요청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부가 제출한 자료에 대해 소송 상대방으로서 이견이 있다면 얼마든지 소송 절차를 통해 제출할 수 있다”며 “재판부가 어떠한 방해와 부담도 없이 최대한 공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최소한 금주 내로 내려질 결정 전까지만이라도 무분별한 자료 공개를 삼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치열한 신경전 한덕수 국무총리(앞에서 세 번째)가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한 총리는 의료계가 법원에 제출된 정부의 의대 증원 근거 자료를 공개한 데 대해 “재판부의 공정한 판단을 위해 무분별한 자료 공개를 삼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시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날 중대본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의 근거가 된) 3개 연구보고서의 공통된 결론이 2035년에 의사 1만명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의대 교육과정이 6년인 점을 감안할 때 2025년에 2000명 증원이 필요한 것은 바로 계산이 나오는 산수”라고 밝혔다. 법원이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곧바로 항고해 대법원 판결을 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전공의 집단이탈 후 경영난을 겪는 수련병원들에게 건강보험 급여를 선지급하기로 했다. 인건비 지급 등을 제때 하지 못하는 병원의 신청을 받아 전년 동월 급여비의 30%를 우선 지급하고, 내년 1분기 이후 정산할 계획이다. 의대생들 수업 거부가 이어지자 ‘유급방지책’의 일환으로 ‘2020년처럼 의사 국가시험을 연기해달라’는 일부 대학들 건의에 대해 교육부는 “소관 부처인 복지부와 지원 방안에 대해 협의하겠다”고 했고, 복지부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우·조희연·유태영 기자, 세종=김유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