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청약은 이명박(MB) 정부 때인 2009년 도입됐다가 입주 지연 문제를 드러낸 채 2년 만에 폐기된 제도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속도전을 펴는 과정에서 2021년 7월 사전청약을 재도입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본청약이 1년 정도 지연되는 것은 다반사였고, 2∼3년 늦어지는 단지도 속출했다. 10년 전과 똑같은 부작용이다.
이를 이어받은 윤석열 정부는 14일 사전청약 폐지를 발표했지만, 1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공공분양주택 '뉴홈' 분양에 사전청약을 활용한 뒤였다.
◇ 2010년의 실패 그대로 답습…절반이 계약 포기
지난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 5개월간 이어진 사전청약은 2009∼2010년 '사전예약'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했다.
2009년 11월 첫 사전예약을 받은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 4곳(강남 세곡·서초 우면·고양 원흥·하남 미사)은 그런대로 본청약 일정을 맞췄지만, 이듬해 2차 지구부터 사업 차질을 빚었다.
서울 항동, 하남 감일, 구리 갈매 등 대부분 사업지에서 보상 지연, 문화재 발굴, 지역주민 민원 제기 등의 문제로 본청약이 미뤄졌다.
집값 급등기에 재도입된 사전청약은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추정 분양가가 저렴한 데다, 대부분이 3기 신도시 등 수도권 입지여서 청약 대기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3기 신도시는 토지 보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사전청약을 실시했는데, 당시 국토교통부는 "문화재 발굴 등 사업 지연 우려가 있는 곳은 제외했기에 사전청약 1∼2년 후엔 본청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2021년 7월 1차 사전청약 지구부터 대거 본청약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성남복정1 정도만 본청약이 2개월 늦어지며 시간을 대략 맞췄을 뿐이다. 위례 A2-7 신혼희망타운은 2022년 9월 본청약을 약속했으나 실제론 1년 4개월 늦은 올해 1월에야 본청약이 진행됐다.
남양주진접2 본청약은 2년, 의왕청계2는 1년가량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10월 2차 사전청약 지구에서는 본청약이 3년 이상 늦어지게 된 단지(성남복정2, 군포대야미)도 나왔다.
앞서 한 차례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는 지역본부가 사업을 관리할 뿐 본사 차원의 유기적 사업관리가 없었고, 국토부와 LH 간 협의 체계도 부재했다.
기다리다 지친 당첨자들의 이탈이 속출한 것 역시 10여년 전과 같다.
2009∼2010년 사전예약 당첨자(LH 공급분)의 본청약 계약률은 41%, 지금은 54% 수준이다.
◇ 본청약 1년 늦어졌는데 분양가 최대 1억원↑
본청약 일정이 밀리는 것은 사전청약 당첨자 입장에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전세대출을 받았던 이들은 추가 대출 이자를 감당해야 하고, 전월세 계약 시기를 맞춰놓은 경우 추가 계약을 하는 등 주거 계획이 틀어진다.
10여년 전 사전예약 때와 달리 이번엔 분양가 상승 리스크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때는 사전예약 분양가가 사실상 확정 가격이었다. 평균 추정 분양가를 제시한 뒤 본청약 때 동·호수별로 구체화하도록 했다.
본청약이 늦어지며 이탈자가 생겼지만, 사전예약 때 분양가가 그대로 유지되며 일반 본청약 가격보다 훨씬 저렴했다.
2010년 11월 하남감일 전용면적 74㎡의 사전예약 추정 분양가는 3억2천80만원이었는데, 8년 뒤인 2019년 1월 실시된 본청약에선 사전예약 당첨자의 분양가는 그대로고, 일반 분양가는 60% 비싼 4억8천500만원이었다.
당시 '이중가격'으로 시장이 혼선을 겪고 LH는 손실을 본 일을 교훈 삼아 문재인 정부는 사전청약 때 추정 분양가를 안내한 뒤 본청약 때 다시 분양가를 확정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이에 따라 사업이 지연되며 오른 분양가는 사전청약 당첨자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 됐다.
본청약 시점이 1년 4개월 밀린 위례 A2-7 전용면적 55㎡ 추정 분양가는 5억5천576만원이었으나, 본청약 확정 분양가가 5억8천887만∼6억2천187만원으로 최대 6천611만원(11.9%) 상승했다.
본청약이 1년 늦어진 성남신촌 A2 59㎡ 추정 분양가는 6억8천268만원이었는데, 확정 분양가는 6억9천110만∼7억8천870만원으로 최대 1억602만원(15.5%) 올랐다.
본청약이 1년 4개월 늦어진 파주운정3 A22 역시 전용면적 74㎡ 추정 분양가가 3억8천74만원인데, 본청약 확정 분양가는 3억9천182만∼4억2천60만원으로 최대 3천986만원(10.5%) 올랐다.
이 문제는 '뉴홈' 공공분양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재비, 인건비 등 공사비가 가파르게 올랐고, 정부도 원활한 주택 공급을 위해 공공 부문 공사비를 현실화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분양가 인상 폭은 앞선 사례보다 더 커질 수 있다.
◇ '뉴홈' 1만가구 사전청약받은 尹정부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도 사전청약을 적극 활용했다.
정부가 2022년 12월 부동산 관계장관회의에서 공공택지의 사전청약 의무를 폐지하면서 민간 사전청약은 사실상 먼저 사라졌다. 건설사에 공공택지를 분양할 때 사전청약 의무를 뒀는데 이를 없애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공공분양주택 '뉴홈'의 지난해 사전청약 물량은 기존에 발표했던 7만가구에서 1만가구로 확대하고, 사전청약 횟수도 연간 2회에서 3회로 늘렸다.
올해는 '뉴홈' 1만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세 차례 사전청약으로 '뉴홈' 1만가구가 공급됐고, 매번 경쟁률이 치열했다. 서울 동작구 수방사 부지 사전청약 일반공급 경쟁률은 645대 1로 역대 공공분양 경쟁률 중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방사 부지에서는 오염토가 나왔지만, 올해 9월 본청약을 예정대로 진행한다. 오염토가 부지 일부에서 발견돼 정화작업과 착공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다만 입주 일정은 늦어질 수 있다.
이정희 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은 "정부가 뉴홈 사업 일정 관리를 철저하게 할 계획이지만, 본청약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크기에 (사전청약 폐지를) 판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는 사전청약 폐지와 관계없이 올해 공공분양주택 14만가구(인허가 기준)를 예정대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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