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인천 동·미추홀을)은 보수 정당의 ‘험지’인 수도권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던 20·21대 총선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수도권에서 무소속으로 연속 두 번 당선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21대에 이어 22대 총선에서도 참패한 국민의힘을 ‘난파선’에 비유한 그는 “수도권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혁신 보수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4년 뒤 총선도 해보나 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총선 후 당의 혁신과 보수 재건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네 번이나 열었다. 16일 다섯 번째 세미나를 예정하고 있다. 혁신 방안을 마련하고 그 후에 전당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윤 의원은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다”라며 차기 당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놨다.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의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서는 “본인 의지가 중요하지만, 총선 참패의 당사자로서 자숙해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국회 윤 의원 사무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험지인 인천에서 내리 5선에 성공한 비결은.
“인천은 저에게 불모지다. 학연·지연·혈연이 전혀 없다.(윤 의원은 충남 청양이 고향이며, 서울 영등포고교를 졸업했다.) 인천의 발전 가능성과 잠재력에 주목해 지역구로 선택했다. 나는 정치하며 출신 지역, 소속 정당, 이념을 보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당 사람들과도 친하다. 진보층에서도 저를 찍은 사람이 많다. 그리고 정치는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살아남는 것 같다. (이 대목에서 윤 의원은 민원 해결에 고마워하는 진보 유권자가 “윤 의원을 찍었다”며 보내온 문자를 보여줬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윤 의원에 대해 “징글징글하다”고 할 정도로 그의 친화력과 지역구 관리능력을 인정한다.)
―정치적 모토는 무엇인가.
“정도(政道)는 정즉인(政卽人)이다. 정치는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정치라는 뜻이다. 이해관계가 없는 정치는 없다고 하는데, 한국적 상황에서는 이해관계를 뛰어넘어서 인간성에 호소하고 인간성에 곡진할 때 최고의 정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 주민께 신의를 지키고 보은한다는 정신으로 작은 민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또 지역 발전을 위한 분명한 목표와 실행력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했는데, 그 마음이 잘 통했다고 생각한다.” (윤 의원은 지역구의 크고 작은 민원을 빠짐없이 신속히 챙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승객 수가 적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었던 제물포역 1호선 급행 정차를 이뤄냈다. 길고양이를 살펴 달라는 민원에 고양이 집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해 주기도 했다.)
―국민의힘 혁신, 보수 재건 방안은.
“나는 지난해부터 수도권 위기론을 말해 왔다. 수도권 위기론에 대처를 못 했다. 총선 참패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수도권 감수성이 약한 영남 중심 지도부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 못 했다. 체질적 한계가 있다. 세대별 맞춤형 전략도 없었다. 혁신하려면 총선 참패 원인을 진단하고 대선 때 우리를 지지했던 유권자가 왜 우리를 떠났나 이유를 알고, 그분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사죄를 해야 한다. 그리고 혁신 보수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중도·수도권·청년의 ‘중·수·청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수도권 전략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2000년 이후 국민의힘이 수도권에서 승리한 총선은 2008년뿐이다. 수도권 인구 구성의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다. 이번에 수도권 선거의 전략·메시지·정책·공약·인물 배치 모두가 다 틀렸다. 우리의 고질적인 병폐인 뺄셈 정치의 DNA부터 덧셈 정치로 바꿔야 한다. 우리는 2030을 대변하는 이준석 전 대표, 중도층을 대변하는 안철수 의원과의 연합정권 성격이 강하지 않냐. 그런데 집권 후 두 사람을 내쳤다. 이념적 동지의식이 약한 이익집단의 DNA, 국민에 군림하는 DNA도 바꿔야 한다. 지금은 총체적 난국이다. 난파선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국민의힘은 만년 2등이다.”
―황우여 비대위는 혁신형이 아닌데.
“나는 원래 혁신형 비대위를 주장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관리형+혁신형, 즉 통합형 비대위가 되어야 한다. 지금 당장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6월 말 7월 초가 되면 총선 참패는 아득한 과거가 된다. 그때 되면 혁신의 중요성이 떨어진다. 3개월 동안 뭐했냐는 소리가 나온다. 혁신의 밑그림을 그린 후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
―당 대표에 출마하나.
“(잠시 망설인 후) 지금은 총선 참패 원인을 찾고 혁신해야 할 시기다. 혁신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는다. 대통령도 당도 저도 ‘폭망’한다. 지금 출마 얘기를 하면 혁신에 대한 내 진정성의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진정성이 퇴색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다.”
―한동훈 전 위원장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입장은.
“총선 참패에는 대통령 책임도 있지만, 한 전 위원장의 전략도 잘못됐다. 미래를 보는 전략을 세우지 않고 맨날 과거 심판만을 얘기했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참패 책임을 지고 사퇴한 사람이 다시 들어온다는 것은 난센스다. 자숙하는 게 맞다.”
―‘당원 투표 100%’인 당 대표 선출 규칙 개정에 대한 입장은.
“윤심은 당심, 당심은 민심이라고 윤핵관들이 얘기했다. 영국, 일본도 당심만으로 대표를 뽑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는 당심이 민심과 유리돼 있다. 정당은 민심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다. 총선 참패 후 국민의힘이 민심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이미지라도 주기 위해서는 전당대회 룰을 당심 50%, 민심 50%로 고쳐야 한다.”
―당권·대권 분리에 대한 입장은.
“분리한 것을 다시 합치자는 것은 당 대표하는 사람에게 대권으로 가는 카펫을 깔아주자는 것이다. 당권·대권 분리는 우리가 20년 동안 만든 것이다. 적어도 대권 가는 사람은 당권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지금의 당 대표는 1년 밖에 못하지만, 지금 이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없애면 당 대표가 대선 후보가 된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9일 대통령 기자회견을 어떻게 평가하나.
“대통령께서 총선 패배 이후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만나고 비서실장 인선 배경도 직접 설명했다. 9일에도 진솔하게 사과할 건 사과하고 양해를 구할 것은 구했다. 민심을 받아들이고 소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기자회견을 1년 9개월 만에 재개하고 기자들 질문을 무제한으로 받고, 그간의 국정운영과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사과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에 대해 ‘조건부 수용’ 입장을 밝혔는데.
“채 상병의 안타까운 순직 사건에 대해서는 명명백백히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에서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하고 있는데 그걸 그만두고 특검을 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현재 절차적으로 미성숙했기 때문에 일단 공수처에 맡기는 게 낫다는 것 아니냐. 대통령 입장이 맞다고 본다.”
―김건희 특검법은 ‘정치 공세’라고 했는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은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 사건이다. 김 여사와 결혼한 게 2012년 3월이고 주가조작 사건은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점에서 특검 대상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 검찰에서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배제하며 이 사건을 2년 가까이 수사했으나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김 여사가 민간인이었을 때의 사건인데 특검을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제2부속실, 특별감찰관제 부활에 대한 입장은.
“이번에 대통령실 직제 개편하며 민정수석실 부활했을 때 같이 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 여사도 이제는 공개 행보에 나서야 한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수사는 수사대로 해 나가면서 영부인은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특별감찰관제도 여야가 먼저 후보를 추천해야 하므로, 국회에서의 논의부터 진척시킬 필요가 있다.”
―검사 출신 민정수석 기용에 대한 입장은.
“민정수석은 원래 정보를 법적 테두리에서 다뤄야 한다. 그래서 법률가가 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왜 검사 출신이냐에 대한 아쉬움도 있는 게 사실이다. 검사 출신이 아니었으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이름도 민정수석보다는 민생수석이 더 좋았을 것이다.”
―권력 구조를 개편하면 협치가 용이해질까.
“여소야대에서 협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협치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때문이다. 협치를 제도적으로 강요할 수 있게 있는 방안이 권력분산형 개헌이다. 의원내각제 요소를 살리면 권력의 파이를 다 같이 나눌 수 있기 때문에 대화와 소통의 협치에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