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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봄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 장미들이 피어나고 있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주말. 나는 우산을 들고 동네 ‘안산(鞍山)’을 오른다. 안산 입구 폭포 마당에는 부처님오신날을 경축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유명 트로트 가수가 출현하는 행사라 우리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 모인 듯 왁자지껄하다. 그래도 주말 오후 시간에 부처님 덕으로 마을 어른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나는 폭포 뒤쪽 안산으로 오른다. 그토록 향기롭던 아카시아꽃들도 거의 다 지고, 녹음을 향해 질주하는 초록빛 나무들이 비바람에 파도 소리를 내며 내 몸을 휘청이게 한다. 꽤 센 바람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바람이 시원하고 유쾌해 사랑과 평화의 ‘장미 한 송이’를 흥얼거린다. 비도 바람도 숲도 걷기도 다 내가 좋아하는 것. 비록 우산이 휘어질 정도로 센 바람이지만 오늘은 오랫동안 숲속에 있어도 좋을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 동네 안에 이토록 젊고 싱싱하고 어여쁜 산이 있다는 데 놀랐다. 북촌의 삼청공원과는 게임이 안 될 정도로 깊었다. 안산 자락길을 따라가면 인왕산, 북한산은 물론 멀리 남산도 보이고, 안산 봉수대에 올라서면 확 트인 시야 사이로 한강, 여의도, 관악산 줄기까지 보인다. 게다가 순환형 무장애숲길이라 산림욕을 즐기며 산책하기 정말 편하고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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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바람이 부는 날이라 메타세쿼이아 숲까지만 갔다가 내려오면서 동네 입구에 있는 ‘장미 터널’로 들어선다. 제법 긴 장미 터널엔 갖가지 장미들이 향기와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고 있다. 장미는 활짝 필 때도 몽우리일 때도 시들어갈 때도 아름다운 꽃이다. 봉오리가 작은 꽃들은 말려도 예쁘고 색도 변하지 않는다. 꽃잎이 주는 촉감도 신비할 정도로 촉촉하다. 양파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꽃이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색색의 장미들을 찍으며 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전, 생 레미 병원에서 그린 ‘야생 장미’를 떠올린다. 분홍 장미를 그렸는데 세월 따라 색이 바래 흰장미처럼 보이는 고흐의 장미. 꽃 그림인데도 고흐의 그림 속에는 언제나 바람이 불고, 삶이 꿈틀거리고, 눈물과 기쁨이 빛 속에서 함께 전율한다. 나는 언제쯤 그런 시를 쓸 수 있을까? 눈물겹게 한심해 고개를 돌리니, 마치 멕시코의 사진작가 티나 모도티의 ‘장미’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흰장미 네 송이가 위로하듯 웃고 있다. 그래, 너희들도 찍어줄게. 티나 모도티의 도발적인 사랑에 내 순수한 열정을 담아. 그래도 장미는 뭐니뭐니해도 불같이 타오르는 태양에서 솟아난 듯한 ‘크루엘라 드 빌’이란 장미가 아닐까?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그 장미가 얼마나 고혹적인지 알고 싶다면 크레이그 길레스피 감독의 영화 ‘크루엘라’를 보라. 그 영화에서 엠마 스톤이 연기한 ‘크루엘라 드 빌’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치명적인 새빨간 장미 한 송이를 만날 수 있으리라.
김상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