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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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대리·택배기사 보호… '노동약자지원법' 기대 반 우려 반

‘노동약자지원법’ 주요 내용

공제회 설치·분쟁조정협의회 만들어
노조 미가입자 지원에 법적 근거 마련
당국 “일하는 사람 기본법 등 참조 될 것”

노동계 “勞勞갈등 불씨 될 수도” 비판
논의 때 라이더들 참여 필요성도 강조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노동 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가칭)을 둘러싸고 노동계에선 기대와 더불어 우려도 내놓고 있다. 배달업 종사자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가 늘어 이들을 위한 별도 법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노노(勞勞) 갈등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양립한다.

 

이날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열린 25번째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은 노동약자지원법 제정 의지를 밝혔다. 미조직 근로자, 즉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은 근로자에 대한 지원에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국회에 이미 발의된 ‘일하는 사람 기본법’, ‘일하는 사람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향후 법안 제정을 논의하는 데 참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노동약자지원법의 두 축은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노조 조합원 수는 272만2000명, 노조 조직률은 13.1%다. 조합원 수는 2021년(293만3000명)과 비교해 21만1000명(7.1%) 줄었고, 노조 조직률도 14.2%에서 1.1%포인트 감소했다. 이에 노조가 없는 미조직 취약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됐다.

 

특히 특고 종사자가 늘면서 관련 법 필요성도 더욱 커졌다. 특고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개인사업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업주의 업무 지시를 받아 활동하는 이들을 뜻한다. 사업자 신분이지만 근로자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는 직군으로, 배달·대리운전·택배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노동약자지원법의 주요 내용 두 가지 중 이날 토론회 현장에선 공제회 설치가 주로 논의됐다. 부산에 거주하는 10년 차 대리운전기사는 전국 최초 대리운전기사 공제회를 만든 일을 언급하며 “현재 450명 정도가 모여 있고, 상근자 없이 운영돼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일종의 사적 보험 성격의 공제회를 정부가 공식 지원해 달라는 요청이다. 일례로 소기업·소상공인의 폐업 등을 보호하는 노란우산공제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에 근거해 시행되고 있다. 소기업·소상공인이 매월 또는 분기별로 일정 금액을 납입하면 폐업 등 위기 시 공제금을 받을 수 있다.

 

노동약자지원법을 구성하는 두 번째 줄기는 특고 등 노동 약자가 분쟁에 휘말렸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쟁조정협의회 설치다. 플랫폼 노동자·특고 노동자가 늘면서 산업 재해 신청 비중이 매해 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주체가 모호하다는 불만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고맙습니다, 함께 보듬는 따뜻한 노동현장’을 주제로 열린 25번째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권리보장 다행이지만 재탕 우려”

 

노동계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을 언급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효성 면에서는 의구심을 표했다. 배달노동자들이 속한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의 구교현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지적했던 내용이 그대로 재탕된 것 같아 상당히 아쉽다”며 “향후 법안을 만드는 데 논의에 라이더들이 꼭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의 발표가 노노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우문숙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미조직 근로자가 권리를 찾는 길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뿐”이라며 “노조를 기득권이라며 공격하는 윤석열정부의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모처럼 노동 약자 지원과 시스템 구축 등에 대한 메시지가 나온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대통령의 메시지가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을 강자와 약자로 구분하는 ‘편 가르기식’ 정책 추진으로 귀결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노동약자지원법에서 핵심은 ‘노동 약자’가 누구인지 여부”라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나 초단시간 노동자, 고령 노동자 등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는 대통령이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준계약서, 공동복지근로기금 등 이번에 발표한 정책 중 대부분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인데, 문제는 구속력이 없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당근과 채찍을 줘서 시행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지민·조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