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도시는 아마도 인천일 것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거치지 않고 한국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몽골은 바다가 없는 나라여서 모든 몽골인은 인천을 거쳐 한국에 입국한다. 그래서 이들은 인천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인천은 몽골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도시이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 고려와 몽골제국이 만난 곳이 인천 근처인 강화도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강화도는 1232년(고종 19년) 몽골이 고려를 침략했을 때 고려가 개경을 떠나 수도로 삼은 곳이다.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나무몽골아동가족센터는 재한 몽골학생들을 모집해 강화도를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참가한 학생들은 몽골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온 학생들로, 초등학생 8명, 중고등학생 7명이었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 자존감이 떨어져 있고, 한국과 몽골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고자 기획되었다.
강화도를 방문한 날 오전, 몽골 국경수비대 소령이 나무몽골아동가족센터에 와서 800여년 전 고려와 몽골의 역사를 몽골어로 설명해 주었다. 오후에 전세 버스를 타고 고려궁지로 갔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으로 위기를 느끼고 39년간 강화도로 천도했을 때 머물던 곳이다. 이날 느닷없는 눈이 조금 내렸지만, 오히려 눈이 왔기에 더욱 운치 있었던 것 같다. 그다음 방문한 곳은 강화도 전쟁박물관이었다. 이 박물관 제2전시실에서는 몽골의 침입 경로, 고려와 몽골의 전투 장면, 몽골 장수의 모형 등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사진도 찍고 필요한 사실을 종이에 적기도 했다.
내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어떤 학생은 몽골의 역사를 새로 알게 되어 자부심이 생겼다고 하고, 또 어떤 학생은 한국인이 몽골의 침입에 그렇게 오랫동안 저항한 것이 놀랍다고 했다. 아무튼, 이번 방문은 몽골 이주배경학생의 자존감 고양, 정체성 확립 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내년에 다시 이런 방문을 기획한다면 좀 더 잘 기획해 보고 싶다.
이번 방문을 통해 새롭게 인식한 것은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라 둘, 셋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몽골 이주배경학생은 기본적으로는 몽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 오래 살다 보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가질 수 있다. 상호문화교육에 따르면 인간은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 이 두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면 한국과 몽골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성인들은 이들이 그렇게 자라도록 도와주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한국과 몽골 두 나라에 다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노민치멕 나무몽골아동가족심리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