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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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걱정을 불안으로 키우지 말자

자신의 생각 관찰·실효적인 행동 필요
능력 발전시키는 게 가장 좋은 예방법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 세상은 걱정거리투성이다. 어느 정도의 걱정은 살아가는 데 필수다. 우리 인간은 걱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미래를 계획하고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런데 걱정과 불안은 다르다.

불안에 빠진 이는 걱정해 봐야 소용없는데도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더 많이 고민해야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걱정했던 최악의 상황이 닥치는 건 무수한 가능성 중에 하나일 뿐이고, 대개는 그 확률이 낮은 편이다. 그런데도 불행이 지금 당장 들이닥친 것처럼 느낀다. 걱정을 실제처럼 믿으니 불안증이 생기는 것이다. 재앙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신체는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반응한다. 몸이 떨리고,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상사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맡겼을 때 ‘발표를 망치면 안 되는데…’라고 걱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심리다. 이런 마음 때문에 우리는 더 열심히 준비하게 된다. 그런데 불안에 취약한 사람은 ‘발표할 때 머릿속이 하얘져서 말도 제대로 못할 것 같아. 그러면 상사에게 밉보여서 승진도 못할 거야. 후배들은 나를 무능하다고 비웃을 거야’라며 있지도 않은 일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런 이미지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좌불안석하게 만든다.

“걱정 좀 그만해!”라고 다그쳐 봐야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걱정이 불안이 되지 않게 하려면 자신의 생각을 관찰하고 실효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불안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걱정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그렇게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다. 전문 용어로 표현하면 ‘부정적 결과의 발생 가능성에 대한 과대 추정’이다. 먹구름이 조금만 껴도 번개가 내리쳐서 나무를 쓰러뜨릴 거라고 예상하는 것이다. 비행기 타는 게 걱정될 수는 있지만, 자신이 탄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추락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발생 가능성은 무지하게 낮고, 자기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그냥 운명에 맡기자! 하늘의 뜻에 따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하는 일 중에는 살다 보면 실제 일어날 확률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인 것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직장을 잃고 재정적 곤란에 빠지는 상황은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이런 걱정은 “그런 일이 생길 가능성은 낮으니까 불안해하지 마”라는 말로 누그러들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걱정이 불안으로 번지는 건 ‘재앙화(catastrophizing) 사고방식’ 때문이다. 자기가 쓴 보고서에 오타 몇 개 있다고 당장 해고당하는 건 아닐 텐데 ‘아, 상사에게 완전히 찍혔어. 권고사직 당할 거야. 내 인생은 파탄 나고 말 거야’라고 파국적인 결과를 떠올리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다. 혹여 직장을 잃더라도 재취업하면 되고 실직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데, 삶이 망가질 거라고 믿으면 불안에 빠지고 만다.

이런 걱정이 불안으로 번지지 않게 하려면 ‘아, 이건 재앙화 사고로구나!’하고 알아차리고 ‘걱정이 현실이 되지 않게 보고서를 꼼꼼히 점검하고, 발표 리허설도 해 보자’고 마음먹고 실천해야 한다. 나쁜 상황이 닥치더라도 극복해낼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불안 예방법이다. 가족과 친구, 상담사를 붙들고 “나 잘할 수 있겠죠? 잘해낼 거라고 응원해 주세요!”라며 위로를 구하는 걸로는 걱정과 불안을 떨쳐낼 수 없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