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구회근)가 의대교수, 의대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을 16일 기각·각하하면서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절차는 정부 로드맵대로 추진될 예정이다.
의대교수들이 17일 휴진을 앞둔 가운데, 이번 결정으로 의료계의 반발이 확산할지 주목된다. 의대교수들은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하면 일주일 휴진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미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은 더욱 작아졌다. 이에 따른 의·정 갈등 지속과 의료 공백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 의대 증원 예정대로
정부는 이날 서울고법의 기각·각하 결정에 환영을 표하면서 의대 증원 절차를 기존 절차대로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법원 결정 후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힘입어, 더 이상의 혼란이 없도록 2025학년도 대학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 측 재항고와 상관없이 정부는 2025학년도 모집인원 확정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현재 각 대학은 증원된 의대 모집인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시행계획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제출한 상태다. 모집인원을 결정하지 않은 차의과대학(현 정원 40명)이 증원분의 최대인 100%(40명)를 모집한다면 전체 의대 증원분은 1509명까지 늘어난다. 이에 따라 2025학년도 전국 40개 의대 모집인원은 4567명이 될 전망이다.
법원에서 의료계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에 따라, 대교협은 이달 안에 대학별 의대 모집 계획을 심의·확정할 예정이다. 각 대학은 이를 반영한 수시모집요강을 확정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대학 홈페이지에 게시해야 한다.
각 대학에선 모집인원 증원과 관련해 학칙 개정도 진행 중인데, 최근에는 법원 결정을 앞두고 이런 절차들이 모두 ‘올스톱’된 상황이었다. 인용 결정이 나올 경우 증원 절차가 중단될 수도 있어서다. 법원 결정이 나온 만큼 대학들도 증원 관련 절차들을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대 증원분을 고려한 대학별 학칙 개정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원 공표 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부산대와 제주대 등이 대학평의원회와 교무회의 심의에서 ‘학칙 개정’을 부결한 것과 관련해선 재심의 등을 거쳐 학칙 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통상 대학들이 학칙을 개정하려면 대학평의원회 심의와 교무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 총장이 확정·공포하게 돼 있다. 대학평의원회와 교무회의에서 교수들 반발로 학칙 개정이 부결되더라도 총장이 확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총리는 “아직 학칙을 개정 중이거나 재심의가 필요한 대학은 법적 의무에 따라 관련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교육부 관계자도 “현재도 의대 모집인원 관련 절차가 확정되지 않아 학교 현장에 혼란이 많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불안정성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재항고 여부와 상관없이 증원 절차를 우선 진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지만, 의료계가 재항고 의사를 밝힌 만큼 작게나마 대법원이 고법과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은 있다. 다만 대법원 판단을 받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해 올해 입시는 정부의 방침대로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교수 1주 휴진, 전공의 미복귀 우려
의료계 반발은 예정된 수순이다. 특히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가 “의대 증원 확정 시 일주일간 집단휴진을 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전국적인 휴진으로 번질 경우 환자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의대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일주일 중 하루를 휴진할 때만 해도 환자들과 일정 조율이 가능했지만, 일주일 휴진을 하게 되면 일정 조율이 사실상 불가능해 무더기 진료·수술 취소와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하루 진료를 미루는 것만 해도 여러 검사 등을 함께 연기해야 해 쉽지 않았고 환자 불만도 컸다. 일주일 치 진료를 통째 연기하는 건 교수들도 평생 경험하지 못한 중대 사태로, 엄청난 혼란이 일 수 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교수들은 “당장 일주일 집단휴진에 나설 계획은 없다”면서도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은 “사실상 현 상황이 해결될 가망이 없어졌는데 이대로 2000명을 증원하면 대한민국 의료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고, 병원은 수익이 악화해 의료계에 종사하는 직군들이 실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증원분에 맞춰 교수를 늘린 대학은 인건비와 시설 비용을 충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국립대 총장은 임기가 종료되면 끝이지만, 국립대 적자는 다 세금으로 메운다”며 “정부가 얼마나 허술하고 불가능한 정책을 추진했는지 국민께 더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이 절차대로 진행되면서 올해 전공의들의 복귀도 사실상 힘들어질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을 집단이탈한 후 3개월이 지나는 19, 20일을 넘기면 이후 병원에 복귀하더라도 올해 수련 기간을 인정받지 못한다. 사실상 내년에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하고, 전문의 시험도 1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의사 커뮤니티에선 “오히려 기각이 낫다. 단일대오를 유지하자”는 반응도 나온다. “법원이 인용했다면 교수들이 (전공의에게) 복귀하라고 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인용됐다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듯한 퇴로를 제공하는 셈이 되는 것인데, 오히려 인용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반응도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