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거시경제 여건 악화, 경기 회복 둔화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건설업이 급격한 침체기에 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때 한국 건설업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던 주택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올해 들어 유독 힘을 받지 못하는 게 그 전조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치솟은 공사비와 건설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조합원들이 선뜻 나서기 어려워졌고, 시공사들도 사업성을 가려 돈이 될 만한 사업장에만 뛰어드는 추세라서다.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아파트 구매 수요가 점차 회복되는 가운데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할 경우 향후 공급 부족으로 지난 정권 때와 같은 집값 폭등 양상이 촉발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해 보인다. 급격한 건설경기 냉각은 전·후방에 유관 산업이 유독 많은 건설업의 특성상 급격한 일자리 감소와 구매능력 하락 등으로 내수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어 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대한건설협회와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주거용 건축 수주액은 10조9592억원으로, 전년 동기(11조7421억원) 대비 6.7% 줄어들었다. 올해 수주액은 1분기 기준으로 2014년(5조7860억원) 이후 10년 만에 가장 적은 액수다.
◆사업성 보장은 옛날 얘기
재개발 수주 감소가 가장 눈에 띈다. 1분기 재개발 수주액은 2조630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7.7% 감소했다. 재건축 수주액의 경우 1분기 전체(2조3575억원)로는 1.8% 증가했으나, 월별로 나눠 보면 점차 줄어드는 모습이다. 1월 재건축 수주액은 전년 동월 대비 44.4% 증가한 반면 2월과 3월은 각각 16.2%, 24.8% 감소했다.
현장에선 재건축·재개발이 과거와 같은 사업성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전반적으로 위축되는 추세라고 보고 있다. 사업성이 좋은 기존 저층(5층 이하) 재건축 단지는 대부분 정비사업이 완료됐고, 최근 공사비까지 급등해 재건축·재개발 수요가 더 움츠러들었다.
시공사들 역시 원가 상승세 속 조합원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공사비를 맞추기 힘든 만큼 과거처럼 출혈 경쟁을 하면서 수주전을 펼칠 이유가 없어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사업지를 정말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업계에선) 큰 사업지나 진짜 수익성이 괜찮은 곳이 아닌 이상 거의 다 포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작년 미국 기준금리 급등 이후 자본조달비용이 증가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찾아온 인플레이션과 공사비 상승은 조합원 분담금 증가로 연결됐다”며 “이 때문에 개별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을 감당할 여력이 있는 사업지를 중심으로 정비사업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주거용 건물 건설공사비지수는 154.11(2015년=10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3월은 전월 대비 0.01% 하락했으나 여전히 높은 154.09(잠정)다. 서진형 광운대 교수(부동산법무학)는 “(재건축) 사업성이 있는 단지와 없는 단지 간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사비를 둘러싸고 시공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재건축 단지도 늘고 있다. 경기 성남시 은행주공재건축조합의 경우 공사비 증액 등을 두고 시공사 측과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최근 계약을 해지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 재건축 사업장은 공사비 인상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공급 부족”
앞으로가 더 문제다. 아파트는 통상 착공 뒤 2∼3년의 준공 기간이 필요하기에 지금 줄어든 정비사업 물량은 2∼3년 뒤 주택 공급 부족분과 직결된다.
서 교수는 “아파트 공급이 사실 어느 정도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이뤄지는데, 현재 여소야대 국회 상황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에 대한 해결 기미가 사라지고 인건비 상승까지 이뤄지면서 재건축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며 “(재건축 위축이) 공급 축소로 이어져서 2∼3년 뒤 가격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서울, 수도권이 공급 이슈에 시달리고 있는데 공사비 이슈가 재건축은 물론 택지 쪽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며 “현실적으로 타협점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규 아파트가 인허가를 받고 준공하는 데까지 통상 3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결국 2027년 이후 공급되는 물량이 최근 공사비 문제와 연결돼 있다는 게 그의 전망이다. 그는 “2026년부터 (서울·수도권 공급량이) 급감한다”며 “2027년 이후 공급되는 양이 충분할 것이냐는 이슈가 곧 공사비 갈등이 어떻게 되느냐의 이슈인데,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민간 건설 분야에서의 대책이 사실상 없는 마당이라 정부의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PF 사업 냉각에 고금리, 조합·시공사 간 공사비 줄다리기 등으로 주택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수요와 공급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공공의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금융 규제 완화와 용적률 제도 개선 등 민간시장 활성화 방안 모색,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을 통한 미분양 물량 공공흡수 대책 등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이 연구위원은 “정책을 다루는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규제 완화가 가격 급등으로 직결되지 않는 시기에 정비사업 관련 규제 완화를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분양 수요가 있는 지역들은 주택 공급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공공의 공급 확대나 매입 임대주택 확대 등을 통해 간극을 공공이 메워 주는 역할이 필요할 것”이라며 “공사비 갈등에 대한 분쟁 조정의 실효성을 높이는 전략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당국이) PF 연착륙 대책을 내놓은 이후 연착륙이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양질의 사업장들은 자금 조달을 통해 분양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지금보다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PF 구조조정이 실제 연착륙으로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게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