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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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간 밤새 ‘클러빙’·상상력 동원… 한강공원 드러누운 ‘꿀잠 고수들’

서울시 ‘제1회 잠 퍼자기 대회’

잠옷 차림 국내외 시민 95명 참가
1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 즐겨
심박수 편차 큰 대학생 우승 기쁨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

 

주말 들어 모처럼 맑은 날씨를 보인 18일 오후 3시. 나들이객으로 붐빈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에 모인 잠옷 차림의 시민 95명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들은 저마다 안대와 마스크, 베개, 담요 등을 챙긴 뒤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처음엔 한낮에 야외에서 잠을 청하는 게 어색한 듯 뒤척이는가 싶더니 하나둘 숨소리가 커지며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누가 얼마나 잠을 깊게 자는지를 겨루는 ‘한강 잠 퍼자기 대회’의 참가자들이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한강 잠퍼자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대회는 5월 나들이철을 맞아 ‘한강 멍 때리기 대회’와 같은 이색 대회를 개최했던 서울시가 올해 처음으로 마련했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수면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잠을 잘 자는 능력을 가리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잠자기 비법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경기 화성에서 왔다는 김지윤(20)씨는 “대회 시작 3시간 전에 도착해 기다렸다”며 “남들보다 잠을 더 잘 자기 위해 이틀 동안 밤새 ‘클러빙’(클럽에 가기)을 즐겼다”고 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20∼30대 청년이었지만, 10대와 50대 참가자도 눈에 띄었다. 서울 강서구 소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김세윤(10)양은 “학교에 다니면서 받는 스트레스로 잠을 못 이룰 때가 많다”며 “오늘만큼은 여기서 푹 자고 스트레스도 풀고 싶다”고 말했다.

누가누가 낮잠 잘 자나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서 열린 ‘한강 잠퍼자기 대회’에서 수면 안대를 낀 참가자들이 편안한 자세로 ‘에어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연합뉴스

외국인 참가자도 있었다. 폴란드에서 왔다는 프셰므(38)씨는 “고향에서는 공원에서 낮잠 자는 사람들이 원래 많다”며 “한국에는 그런 문화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늘 한번 잘 자보겠다”고 웃었다.

 

참가자들은 팔목에 밴드를 차고 30분 단위로 심박수를 측정했다. 통상 잠이 들면 심박수가 20∼30% 떨어지는데, 대회 시작 전과 비교해 심박수의 편차가 큰 참가자를 우승자로 정했다.

 

이날의 ‘잠 최고 고수’는 대학생 양서희(24)씨였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평소 침대맡에 두던 캐릭터 인형을 안고 온 양씨는 “나도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편인데, 그럴 땐 무언가에 몰입하는 상상을 한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2018년 85만5025명에서 2022년 109만8819명으로 28.5% 늘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스트레스 등으로 불면증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잠을 잘 자려면) 일반적으로는 잠자리에 드는 시간과 기상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