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선 임기 시작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중국을 찾았던 블라디미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각의 관측과 달리 북한을 거치지 않고 바로 귀국했다. 이를 두고 중국의 불편함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16∼17일 푸틴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외교가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방중에 이어 북한 방문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지난해 9월 러시아를 찾았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에 응했던 푸틴 대통령이 이번 일정을 북한 방문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이 이번 방중의 마지막 행선지로 북한과 가까운 하얼빈을 선택하면서 그의 깜짝 방북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하얼빈에서 약 740㎞ 떨어진 평야을 찾지 않고 바로 귀국했다.
WSJ는 만약 푸틴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됐다면 중국은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푸틴 대통령와 김 위원장의 밀착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일에 맞선 북·중·러 구도가 고착화하는 것도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이는 서방의 우려를 키워 결과적으로 중국의 외교적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외교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에 북한을 찾지 않은 데 중국 정부의 의사가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은 그간 러시아 측에 북한을 포함한 삼자 동맹보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양자 동맹 발전을 더 선호하는 입장을 명백히 밝혀왔다고 WSJ는 진단했다.
북·중·러는 각각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반기를 든 권위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지만 최근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중국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다. 동북아에서 ‘현상 유지’를 원하는 중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핵개발을 가속화하는 것은 바라는 바가 아니다. 전직 미군 정보장교 출신 연구원 데니스 윌더는 WSJ에 “중국은 북한이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 동북아의 잠재적 위협으로 존재하기를 원한다”며 “북한과 러시아 간의 새로운 우호 관계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도 북한보다는 더 큰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 순위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다. 존 에버라드 전 북한 주재 영국 대사는 WSJ에 “북한은 푸틴에게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라며 최근의 북·러 밀착은 일시적인 ‘외도 관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에서 평양에 방문하라는 김 위원장의 초대를 수락한 만큼 그의 방북이 조만간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레믈궁 대변인은 이날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위한 준비가 제 속도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방북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만약 푸틴 대통령이 올해 북한을 답방하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집권하던 2000년 7월 이후 24년 만의 방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