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영국 보수당 지지율 추락에도…수낵, '조기 총선' 승부수

가을서 ‘7월 4일’로 깜짝 발표

14년 집권당, 野에 지지율 20%P 열세
경제 회복세 보이자 기대 걸며 ‘베팅’
내각·보수당 내부선 즉각 거센 반발
일부 의원들, 총리 불신임 서한 고심

영국에서 7월 4일 차기 정부를 결정할 조기 총선이 치러진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는 보수당 리시 수낵(사진) 영국 총리가 10∼11월로 예상됐던 총선 시기를 앞당긴 것은 최근 영국 경제 회복세에 한 줌 기대를 걸고 승부수를 던진 ‘정치적 도박’으로 해석된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대표는 14년 만의 정권 교체를 다짐했다.

 

수낵 총리는 22일(현지시간)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예정에 없던 깜짝 연설을 통해 “영국이 미래를 선택할 순간”이라며 7월 4일 총선을 치를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날 찰스 3세 국왕과의 15분간 정기 접견에서 다음 총선을 위한 의회 해산을 요청했고 찰스 3세가 이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연설 중 때마침 내린 비로 어깨가 흠뻑 젖은 수낵 총리는 비장한 모습으로 “우리가 힘겹게 얻어낸 경제적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는 건 내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뿐”이라며 “문제는 당신이 가족과 나라에 안전한 미래를 위해 누구를 믿느냐”고 강조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각) 런던 총리 관저 밖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총선 일정을 발표한 후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AP뉴시스

영국법상 다음 총선은 내년 1월 28일까지 치러지면 되지만 총리가 총선 날짜를 정할 수 있다. 그간 수낵 총리는 총선이 올해 하반기에 치러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 날짜는 제시하지 않았다. 전례에 따라 10∼11월이 유력한 것으로 거론됐는데 수낵 총리가 이를 대폭 앞당긴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수낵 총리의 발표를 ‘도박’(gamble)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14년간 집권해온 보수당은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경제 악화, 브렉시트에 대한 지지 상실 등을 거치며 지지율이 제1야당 노동당에 2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지난 2일 치러진 영국 지방선거에서는 직선 시장 자리 11곳 중 10곳을 노동당이 차지했다.

 

총선 패배 가능성이 크지만 수낵 총리가 조기 총선을 선택한 것은 영국 경제가 차츰 회복세를 보이는데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영국 경제가 지금의 회복세보다 더 나아질 기미는 없기 때문에 수낵 총리가 빠르게 총선을 치르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내각과 보수당 내부에선 거센 반발이 나오고 있다. 내각 구성원인 에스더 맥베이 주택공동체지방정부부 장관, 크리스 히튼 해리스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은 아직 지지세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 속에 이날 수낵 총리의 결정을 우려하고 있으며, 일부 의원들은 총리 불신임 서한을 제출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노동당 대표. 공동취재사진

내각제인 영국에서 총선이 치러지면 여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7월 총선 뒤에는 수낵 총리 혹은 노동당의 스타머 대표가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14년 만의 정권 교체를 노리는 스타머 대표는 이날 조기 총선 발표에 대해 사전 녹화된 영상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려 “이 나라가 기다려온 순간”이라며 “보수당 정권 14년을 거치며 이제 제대로 작동되는 것이 없는 것 같다. 혼란을 멈추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 재건을 시작하자”고 강조했다. 스타머 대표는 인권 변호사를 거쳐 잉글랜드·웨일스를 관할하는 왕립검찰청(CPS) 수장인 검찰국장을 지냈다. 금융인 출신이자 자산가인 수낵 총리와 배경부터 선명히 다르다. 키어라는 이름은 좌파 성향인 그의 부모가 영국 노동당 창립자 키어 하디(1856∼1915) 초대 당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더 강경한 좌파로 꼽히는 제러미 코빈 전 대표와는 거리를 두면서 당을 좀 더 중도 쪽으로 이동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스타머 대표는 이날 집권을 대비해 구성해온 그림자 내각을 소집해 화상회의를 열고 선거 캠페인을 독려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