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노인종합복지관 주차장에서 승용차가 후진 중 노인 4명을 덮쳤다. 이 사고로 80대 여성 1명이 숨지고 나머지 3명은 부상을 입었다. 이 차의 운전자는 A(91)씨였다. 경찰은 A씨가 기어 조작을 착각해 후진 상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것으로 봤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 3명을 치어 숨지게 한 80대 운전자가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B(82)씨는 지난해 11월 강원 춘천시 인근 도로에서 차량 신호가 적색임에도 이를 무시한 채 달리다가 사고를 일으켰다. 사고가 발생한 도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60㎞였는데, B씨는 사고 당시 시속 97㎞로 달린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경찰에 보행자들을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에 따라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도 매년 늘어가는 가운데, 정부의 조건부 운전면허 도입 방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자진 반납률이 2%대에 불과한 만큼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고령자의 이동권을 차별한다는 여론이 맞선다. 개별 고령자의 실질적인 운전능력을 평가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지난해 3만9614건으로 집계됐다. 전년에 비해 4962건(14.3%) 증가한 수치로, 집계 이후 최고치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로 1년 전(17.6%)보다 늘었다. 고령 인구 증가에 따라 운전면허를 소지한 고령자가 늘어나 생긴 결과로 분석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운전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다. 지난해 운전면허를 자발적으로 반납한 고령 운전자는 전체 고령 운전자 474만7426명 가운데 2.4%(11만2896명)에 불과하다.
이미 조건부 면허 제도를 도입한 해외 주요 국가들의 경우 실차 주행을 통해 고령자의 실질적인 운전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3월 공개한 ‘고령자 운전면허 관리제도의 해외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대부분의 주는 고령 운전자에 대해 면허 갱신주기 단축 및 의료 평가, 도로주행시험, 제한면허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70세 이상 운전자의 운전면허를 재심사한다. 운전자는 운전능력에 따라 거주지 내에서만 운전이 가능한 제한면허 등 일정 조건이 부과된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일리노이주의 경우 75~80세 운전자는 4년, 81~86세 2년, 87세 이상은 매년 주기로 운전면허를 갱신해야 한다. 이때 운전자는 의무적으로 도로주행시험을 받아야 한다.
일본 또한 유사한 제도를 도입한 상황이다. 71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갱신 주기를 34년으로 하되, 70세 이상은 갱신할 때 고령자 강습을 수강해야 한다. 75세 이상 운전자는 인지 기능검사 또한 받아야 한다. 2022년에는 자동 브레이크 등 안전기능이 탑재된 자동차만 운전할 수 있는 고령자 전용 운전면허가 신설되기도 했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고위험 운전자의 운전능력 평가 방법 및 조건 부여 등에 관한 기술개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충분한 여론 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의 세부 검토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