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의 한 방위산업체에 30년간 다니던 그는 2011년 퇴직했다. 퇴직을 앞두고 그는 귀농할 곳을 알아보고 다녔다. 그가 귀농터로 잡은 곳은 창원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경북 의령군 칠곡면이다. 연고가 없는 낯선 곳이다. 24일 찾은 이 곳은 산세가 있고 채 10가구가 살지않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부인과 함께 제2의 보금자리를 잡았다.
브라운파머스 김동재(70) 대표의 귀농은 이렇게 시작됐다. 김대표의 귀농은 남달랐다. 그는 귀농에 자신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30년간 취미로 모은 수석이 3만점이 넘었기때문이다. 수석 전시장을 활용하면 노후 걱정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귀농 후 제일 먼저 구입한 축사를 헐고 도로를 내고 수석을 전시하는 전시장을 만들었다.
“귀농요? 수석 한점씩 팔면 넉넉하게 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런 김대표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귀농 후 수석 인기가 시들해진 것이다. 그동안 애써 모은 수석이 애물단지가 된 셈이다. 수석 전시장은 결국 폐쇄되고 수석들은 마당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귀농한지 2년이 지나니 통장 잔고가 보였다.
“다른 길을 찾아야 했어요” 때마침 TV를 보던중 미래산업으로 식용곤충이 뜨겠다는 확신을 갖게됐다. 2012년 중국과 필리핀 등 동남아를 돌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전국의 식용곤충 선진지도 견학했다. 그가 찾은 먹거리는 ‘밀웜’이었다. 도마뱀과 이구아나의 먹이로 국내에서는 2016년 고소애라는 식품으로 등재됐다.
국내에서도 식용곤충 바람이 불었다. 2014년 곤충이 식품으로 등재된다는 식약처의 예고가 뜨면서다.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6년 3월부터 곤충이 먹는 식품으로 등재됐다.
귀농귀촌인들은 너도나도 식용곤충 사업에 뛰어들었다. 김대표도 그중 한명이었다. “밀웜이 간특효약으로 알려지면서 1㎏에 150만원까지 갔어요” 그동안 전국의 100여가구에 불과하던 곤충재배 농가는 식품등재 이후 2년만에 3000가구로 늘었다.
김대표는 꾸준히 식용곤충을 연구했다. 굼벵이를 친환경으로 사육해 바로 식용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곤충박사로 이름을 날리면서 식용곤충 1세대의 자리를 굳혔다. 한국곤충산업협회 이사와 경남지회장을 지낼 정도로 식용곤충의 전문가가 됐다.
“2014년 참고소애로 회사를 차렸어요”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고소애와 친환경 현미를 원료로 누룽지를 개발한 것이다. 참고소애는 고영양 단백질의 곤충스낵 제품이다. 간식용으로 인기를 끌면서 제조방법을 배우려는 귀농인과 이를 맛보려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이런 붐도 오래가지 못했다. 식용곤충이 혐오식품으로 낙인찍히면서 방문객들이 급감했다. 당시 귀뚜라미 식용제품으로 300억원대 사기극이 언론에 나오면서 그야말로 곤충산업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2019년 코로나19 시기다. 굼벵이를 원료로 항노화 제품 개발사업에 뛰어들었다. 굼벵이의 명칭도 꽃벵이로 바뀌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고 자본 1억5000만원을 들여 굼벵이 누룽지라는 신상품을 개발했다. “내가 먼저 먹어보면서 시험과 연구를 계속 했어요” 김대표는 혈압과 통풍, 결석으로 건강이 매우 좋지않다. 그래서 그는 굼벵이 식품을 개발하면서 자신이 먹어보고 효과를 입증하는 ‘셀프 마루타’ 역할을 했다.
유기농 친환경으로 재배한 굼벵이를 원료로 한 굼벵이환과 누룽지 상품은 입소문이 나면서 불티나게 팔렸다. 누룽지는 식감이 좋은데다 다이어트 상품으로 알려지면서 효자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굼벵이에 하은초라는 원료를 섞어만든 굼벵이환도 인기를 끌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김대표는 식용곤충체험장을 만들었다. “어릴때부터 친환경으로 재배하는 굼벵이 성장 과정을 보면 혐오식품이라는 말은 안 나오겠죠?” 그는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굼베이의 재배과정을 체험하게 하는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해 3500여명의 초등학생이 굼벵이 체험 을 했다.
김대표는 곤충식품의 멘티 역할을 하고 있다. 곤충 재배를 하려는 초보 귀농인들에게 꼼꼼하게 재배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김대표는 귀농하기 위해서는 수입없이 3년을 생활할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어떤 농사를 지어도 바로 내년에 풍족할 만한 수확을 내는 작물은 없어요” 그는 귀농의 삶의 질을 높이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퇴직 후 귀농하면 적어도 65세 정도가 돼야 일정한 농사수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얼마나 준비를 잘하느냐에 따라서 귀농 후 수입 없는 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