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에서 징역 50년을 선고받은 이른바 ‘대구판 돌려차기’ 가해자가 2심에서 27년으로 감형된 것에 대해 여성단체가 납득할 수 없는 감형사유라며 규탄하고 나섰다. 재판부가 감형사유로 피해자 지능이 호전된 사실과 함께 ‘피해자 동의없는’ 공탁까지 참작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 커질 전망이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가해자인 피고인을 대변하는 대구고법 형사1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26일 밝혔다. 이 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감형 사유는 ‘피고가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피해자가 호전된 점”이라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부분에서 하루아침에 삶이 파괴된 피해자들도 동의하는지 묻고 싶다. 반성은 당연하지 감형 사유가 돼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감형 사유로 형사공탁을 참작한 점도 지적했다. 피해자의 입장과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형사공탁이 감형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사건을 통해서 결국 돈만 내면 감형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사법부가 주고 있는 셈"이라며 꼬집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있어 얼마나 인식이 부족한지, 심각성이나 경각심이 없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판결”이라며 “가해자를 대변하는 듯한 사법부의 판단에 국민은 전혀 공감할 수 없다. 잔혹하고 심각한 범죄에 강력한 처벌로 정의 구현해 사법부 역할을 제대로 다할 것을 요구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 판결, 피해자 중심주의에 입각한 판결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앞서 대구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성욱)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가해자 A(29)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5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 남성에 대한 범행은 계획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이는 점, 검사의 제1심 구형 의견은 징역 30년 등이었고 동종 유사 사례의 양형을 종합해 보면 원심이 피고인에게 법정 최상형인 징역 50년을 선고하는 것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감형의 이유를 설명했다.
'대구판 돌려치기 사건'은 지난해 5월 대구 북구 대학가에서 발생했다. 2022년 부산에서 30대 남성이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여성을 성폭행하려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처럼 '묻지마 범죄'였다는 이유로 '대구판 돌려차기' 사건으로 불린다.
피해여성 B씨는 지난해 5월 13일 오후 10시 56분쯤 대구 북구 한 원룸으로 귀가 중이었다. 배달기사 복장으로 B씨를 뒤따라가던 A씨는 원룸까지 침입해 흉기를 휘두르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마침 원룸에 들어온 B씨 남자친구에 의해 범행은 제지됐지만 A씨는 남자친구의 얼굴과 목, 어깨 등을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하려 했다.
B씨는 이 사건으로 손목 동맥이 끊겼으며, 그의 남자친구는 자상으로 인한 다발성 외상, 그에 따른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11살 수준의 인지 능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