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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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돈의문박물관마을 철거 놓고 서울시·상인 갈등

2017년 도시재생 일환으로 개관
市 “마을 활성화 안돼 시설물 반환”

상인들 “협의 없이 일방 추진” 반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소송 계획

조선시대 돈의문(서대문) 터 인근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개관 7년여 만에 철거될 처지에 놓이면서 서울시와 상인들 간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시는 마을을 철거한 뒤 공원을 조성하고 장기적으론 돈의문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인데, 상인들은 시가 일방적으로 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26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시는 지난 1월 돈의문 복원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최근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입점한 일부 상인에게 ‘시설물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시는 사용기간 만료일이 가장 빠른 가게부터 차례로 계약을 끝내고 10월까지 모두 퇴거시킬 계획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추진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이었다. 서대문 일대가 뉴타운으로 재개발되자 정동사거리 인근에 건물 일부를 보수한 뒤 2017년에 문을 열었다. 마을 조성에 300억원 넘게 투입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당시 방문객이 급감해 ‘유령 마을’이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시는 지난 1월 돈의문 복원 구상을 밝히면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2026년까지 공원으로 만들고 장기적으론 새문안로를 지하화한 뒤 돈의문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시가 돈의문박물관마을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철거를 공식화한 데 대해 상인들은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한다. 실제로 2020년 17만4374명까지 줄어든 관람객은 2022년 41만5330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지난해는 전년보다 27% 이상 증가한 52만7873명이 마을을 찾았고, 올해는 한 달에 6만명 넘는 시민들이 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주말의 경우 하루 관람객이 7000∼8000명 수준이다. 다만 서울시 관계자는 “마을 방문객뿐만 아니라 경희궁지 활성화 등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 번질 조짐이다. 최근 공문을 받은 분식집 ‘학교앞분식’은 시 측에 계약갱신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며 사실상 퇴거 요청에 불응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2021년부터 학교앞분식을 운영한 김은주(50)씨는 “개점 당시엔 시에서 마을에 손님이 없다고 아이디어를 요청했다”며 “옛날 벽화를 그리고 상인들이 합심해 이벤트도 열면서 마을을 살렸다”고 말했다. 마을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한 상인들과 사전 협의나 안내도 없이 계약만료를 통보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계약하고 지난 1월부터 바비큐 장사를 시작한 김진규(48)씨도 “최소 1년 연장은 가능하다고 보고 들어온 것”이라며 “주변 상인들이랑 얘기해보지도 않고 구체적인 공원화 계획도 발표하기 전에 무작정 나가라고 하는 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 인근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정한 기자

시는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유재산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유재산 임대 계약 연장이 무조건 보장된다면 공공사업이 진행될 수가 없고 혜택에 따른 공정성 문제도 있다”고 밝혔다. 시는 상인들이 계약만료 후에도 나가지 않고 버틴다면 행정처분에 들어갈 방침이다. 공유재산의 경우 사용기간이 만료됐는데도 무단 점유 시 사용료의 120%에 해당하는 변상금이 부과될 수 있다. 원상복구 명령 등을 따르지 않으면 강제집행에 나설 수도 있다. 마을 내 일부 상인들은 시를 상대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행정 소송에 나서 법적 다툼을 이어가기로 했다.


글·사진=이정한 기자 h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