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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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축구협회는 어디로 가나

클린스만 무능력·선수단 갈등
40년 만에 올림픽행 좌절 충격
정몽규 회장, 책임 지기보다는
거침없는 4선 행보 우려 증폭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2024년은 어떻게 기록될까. 아마 역사상 최악의 해 중 하나로 남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선임 당시부터 우려가 컸던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의 지휘 아래 1월 출전한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요르단에 패하는 충격을 팬들에게 안겼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이 있는 역대 최강 멤버라는 말이 무색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걱정했던 대로 ‘무전술’로 일관했다. 이에 더해 손흥민과 이강인이 대회 도중 물리적 충돌을 빚은 ‘탁구 스캔들’까지 터지며 감독과 협회의 선수단 관리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송용준 문화체육부장

결국 이는 클리스만 감독의 경질로 이어졌고 한국 축구는 이후 대혼돈에 빠졌다. 올림픽 예선을 준비해야 할 23세 이하(U-23)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국가대표 감독을 맡겨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지역 예선을 치렀다. 아랫돌을 빼다 윗돌을 괴다 보니 결국 사달이 났다. 정작 올림픽 최종예선이었던 4월 U-23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황선홍호’는 인도네시아에 지며 파리 올림픽 출전 좌절이라는 충격을 안겼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에 나가지 못한 것은 1984년 이후 무려 40년 만일 만큼 ‘참사’였다. 이런 가운데 4개월이 넘도록 새 감독도 선임하지 못하고 다가올 6월 월드컵 예선도 또다시 임시감독 체제로 치르는 파행이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한국 축구가 왜 이렇게 됐을까. 역시 책임은 대한축구협회와 그 수장인 정몽규 회장에게 있어 보인다. 당장 잘못된 대표팀 감독 선임을 주도한 것이 정 회장이기 때문이다. 클린스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음에도 이름값에만 기대 밀어붙였고 이 잘못된 선택 하나가 한국 축구를 혼란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책임지는 모습보다 다른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이미 3연임으로 12년을 지켜온 협회장 자리를 4년 더 하기 위해 내년 1월 예정된 협회장 선거에 도전하려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계 내부에서는 정 회장의 4선 행보가 ‘대사면 파동’이 시작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지난 3월 축구협회는 뜬금없이 승부조작 연루자 등 비리 축구인사들을 사면한다는 발표를 했다가 비난 여론이 휘몰아치자 3일 만에 사과하고 번복한 해프닝이 있었다. 당시 사면 대상자 100명 가운데 승부조작 관련자들만 대중에게 알려졌을 뿐 전체 명단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그 비공개 인사 중에 정 회장의 4선 도전에 필요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4선을 위한 좀더 구체적인 행보는 정 회장이 최근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에 당선된 것이다. 체육단체장은 3연임부터는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도전할 수 있는데, 단체장이 국제단체 임원 자리를 가지면 공정위 심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지기에 4연임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 또 하나 축구협회의 어려워진 재정 문제도 정 회장의 4선 행보에 유리한 요소라는 시각도 있다. 축구협회는 천안에 건립하기로 한 축구센터의 착공이 늦어지면서 300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이런 재정 부담을 해소해 줄 사람이 대기업 오너인 정 회장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협회 안팎에서 들려온다. 정 회장도 자신의 4선 명분으로 천안축구센터의 완성을 내세울 것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정 회장의 협회장 4연임을 바라보는 여론은 냉소적이지만 이와 상관없이 정 회장의 행보는 거침없어 보인다. 지난 23일에는 자신의 회사인 HDC산업개발이 축구협회와 공식 파트너십을 맺으며 후원에 나섰고 최근에는 70세 이상 협회장 출마 제한 규정도 만들어 잠재적 경쟁자들의 출마를 막으려 한다는 의혹의 시선도 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비판 속에서도 정 회장이 4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협회장 선거가 200명 남짓의 대의원들만 참여하는 간접선거이기 때문이다. 마치 과거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듯 국민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 축구협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 이는 소수 축구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송용준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