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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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尹·李 3차례 통화, 공수처 진실 규명 미흡 땐 특검 자초할 것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일 해병대 수사단이 채 상병 순직사건 기록을 경찰에 이첩하자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세 차례나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7월31일 오전 이른바 ‘VIP 격노설’의 단초가 된 윤 대통령 주재 국가안보실 회의가 종료된 즈음에는 이 전 장관이 대통령실 유선전화를 받고 2분48초간 통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명 혐의 등을 재판 중인 군사법원이 이 전 장관의 통신기록을 조회한 결과다. 통화 여부와 대화 내용에 대한 공수처의 철저한 진상 규명이 불가피해졌다.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첫 통화는 8월2일 오후 12시7분쯤 4분5초간 이뤄졌다. 채 상병 사망과 관련,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지휘관 8명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조사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지 10여분이 지난 때였다. 윤 대통령은 32분 뒤 재차 전화를 걸었다. 이 통화는 13분43초간 이어졌는데 그 사이 박 수사단장은 보직 해임을 통보받았다. 마지막 통화는 12시57분이었다. 이때도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53초간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는 이날 오후 7시20분쯤 국방부 검찰단은 경북경찰청에서 채 상병 사건 기록을 회수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 간 통화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지만 시점이 석연찮다.

더구나 이날은 윤 대통령이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개영식에 참석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잼버리는 개막 첫날부터 폭염으로 온열질환자가 무더기 발생하며 대혼란이 일었던 터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었던 이 전 장관을 3차례나 불러낸 것이다. 무슨 급박한 사정이 있었던 건가. 누가 봐도 외압 의혹을 제기할 만하다.

VIP 격노설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의혹의 핵심쟁점이자 원인이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가 무엇을 의미하겠나. 국민들로선 지레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제 채 상병 사망사건은 지휘관 지휘책임을 묻는 일에서 대통령과 국방부, 해병대의 진실 공방으로 비화했다. 단초는 대통령과 정부가 제공했다. 더 이상 의혹이 커지기 전에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와 별개로 공수처는 성역 없이 수사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야당의 채 상병 특검법 요구가 거세지고 국민의 찬성 여론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