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 문제가 쓰레기 투척전으로 비화하면서 “국제 망신“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9월 26일 대북전단 금지법 위헌 결정이 난 뒤로 대북전단 문제와 관련한 행정 대책이나 추가 입법 등 제도적 대안과 해법 마련은 8개월 동안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다. ‘예고된 사태’라는 지적이 나온다.
◆“냉전 잔재로 국제 망신”
전문가들은 자존심을 과하게 내세우는 북한 정치 특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고 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30일 이번 오물 풍선이 “빈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5월 26일국방성 김강일 부상 명의 담화를 내고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이 북으로 날아오면 “국경침범“으로 간주하고 “맞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 부상은 “최근 들어 우리 국경지역에 삐라와 각종 너절한 물건짝들을 살포하는 한국의 비열한 심리모략책동이 있다”며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국경지역과 종심지역에 살포될 것이며 이를 수거하는 데 얼마만한 공력이 드는가는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일부 전단 단체는 북한에 한류 콘텐츠 등 외부세계 정보가 담긴 이동식저장장치(USB)와 김정은 비난 전단, 달러 지폐, 쌀, 비타민이나 타이레놀 등을 수소 풍선에 매달아 보낸다. 이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내는 후원금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눈과 귀가 막힌 북한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북한 체제 비난 내용을 전단에 담는다. 그러나 효과가 없다는 것도 주장도 꽤나 퍼져있다. 북한 관련 업무를 20년 이상 해온 전문가는 “효과가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북전단과 물품은 DMZ를 다 넘어가지 못하고 우리 측에 떨어지기도 한다. 단체 활동을 하지 않는 평범한 한 국내 탈북민은 북한에 있을 때 쌀이나 약 등을 주워 썼는지 물어보면 “바닥에 떨어진 걸 누가 줍느냐”며 오히려 불쾌하다는 반응도 보인다.
북한과의 체제경쟁을 하는 방법이나 외부 정보를 투입하는 루트는 다양하다. 간접적으로는 남한 체제가 부강하게 발전해나가는 존재 자체를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직접적으로는 북·중 국경을 오가는 상인이나 브로커 등을 통해 남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나 USB 들여보내는 방법이 알려져 있다. 대북전단은 그 방법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나 1900년대 초 1, 2차 세계대전때 많이 쓰인 방법으로 통한다.
남북은 2000년 첫 정상회담때 더 이상 소모적인 전단 투하를 서로 중단하기로 하면서 남북 ‘삐라전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민간 단체를 중심으로 전단 날리기가 부활했다. 당국의 군사작전인 심리전으로서가 아닌, ‘운동’ 차원으로 시작된 것이다.
전단 갈등 심화와 동시에 미디어 보도 등을 통해 이들 단체의 영향력도 상당해졌다. 최근엔 미국 조야 유력 인사인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방한해 북한의 심화하는 군사 도발 행동에 대응할 방법으로 “한류콘텐츠를 담은 USB 100만개를 살포하겠다고 선언하자”고 할 정도로 이 ‘복고적’ 방법이 유명해졌다. 전단 단체 측은 전단이 분명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적정 장소 투하율이 낮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드론을 활용해 확률을 높일 것이라고 반박한다.
양무진 교수는 “심리전이든 정보전이든 ‘삐라’는 냉전의 잔재”라며 “남북한 삐라전은 국제적 망신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백해무익한 삐라 근절에 대한 법제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책 공백 8개월...그 사이 막 나간 ‘말폭탄’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는 남북관계발전법 상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약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 결정은 접경지역 안전문제 등 우려에 대해서는 경찰 행정력으로 단체들을 제지시킬 방법이 있으니 다른 방법으로 적절한 관리를 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대북전단 금지법이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등 정치적 논란에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것만으로도 일선 현장에서 행정력이 이미 약화돼 있었다는 게 접경지역 목소리였다. 통일부는 2022년 9월 22일을 마지막으로, 대북전단 살포시 위험 예방 계도 조치를 중단했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에 협조공문 한번 보내지 않았다.(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7512579 통일부, 대북전단 살포시 ‘위험 예방 조치’ 1년간 한 번도 안했다)
통일부 입장엔 이 같은 기류가 내내 반영됐다. 법적 강제 조항이 헌재 결정으로 즉각 효력을 상실했다면 단체와의 소통이나 정부의 설득은 더 중요해져야 했지만, 정반대로 흘렀다. “단체들에 자제를 요청한다“던 통일부 공식 입장은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을 계기로 후퇴했다.
위헌 결정 이후 통일부는 기존의 “자제 요청” 대신 “관련 단체와 잘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맥락에서 접근하겠다”고 부연했다. 위헌 결정 직후에는 “헌재 결정을 환영한다”며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졸속 개정됐다”는 등 ‘유체이탈’같은 화법으로 정당 논평같은 입장문을 내기도 했다. 행정부는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다.
위헌 결정에 따라 국회에서는 남북관계발전법에서 효력 정지된 조항을 삭제하고 대체입법을 해야 하지만, 21대 국회는 성과 없이 막을 내린 상태다. 여야 의원들이 각각 개정안은 제출하긴 했지만 이렇다 할 논의 없이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대책 공백이던 사이, 북한은 추가 대북전단 살포시 맞대응하겠다는 경고를 강한 어조로 밝혀왔다. 지난해 11월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의 ‘김윤미’라는 개인 필명 형식의 보도문을 게재하면서 우리 헌재의 위헌 결정을 비난했다. “놈들의 삐라 살포 거점은 물론 괴뢰 아성에까지 징벌의 소나기를 퍼부어야 한다는 것이 격노한우리 혁명무력의 입장”이라고 위협했다. 당시 통일부도 북한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헌재 결정을 빌미로 북한은 경거망동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강조했다.
잠시나마 가라앉았던 우려는 봄에 남풍이 불면서 되살아났다. 위헌결정 이후 첫 대북전단 공개 살포가 5월 10일 진행됐다.
남북은 서로 다른 체제의 논리만 앞세우며 내내 ‘말폭탄’을 이어갔다. 북한의 반발에 우리 정부는 “정부와 무관한 민간의 활동”임을 내세우며 트집잡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당을 중심으로 한 집단주의 사회에 시민사회랄 것도 없는 북한은 모르는 척 일관했다. 북한은 당국이 오물 풍선을 보내 놓고 “우리 인민의 표현의 자유”(5·29김여정담화)라고 주장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궤변”이라고(5·30 외교부 대변인) 치부하며 비난했다. 한 탈북민은 “북에 있을 때 남한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귀순하게 하려고 보내는 건 줄 알았다”며 “탈북민들이 보낸다는 건 한국에 오고 나서 알았다”고 말했다.
국회 관계자는 위헌 결정 이후 후속입법 논의와 관련해 “여야 입장차가 워낙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라고 했다. 22대 국회가 열리면 대체입법을 ‘표현의 자유’ 문제와 ‘안보·안전’ 문제 중 어디에 초점을 둘 것인지를 두고 여야가 평행선을 달릴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