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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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약자의 역사’를 목격하게 한다“…다크투어리즘이 평화운동에 미치는 영향

“다크투어리즘은 역사의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개개인이 겪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한다. 그 순간 기득권의 텍스트에서 한꺼풀이 벗겨지고 그 안에 ‘약자의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한다.” (김잔디 ㈔제주다크투어 사무국장)

 

“우리가 배운 ‘승자의 역사’ 외에 다양한 ‘히스토리’와 ‘허스토리’를 부상시키는 것이 다크투어리즘의 목적이자 21세기 버전의 역사 교육이고 윤리 교육이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사진=제주포럼 제공

제주특별자치도 중앙협력본부와 ㈔한반도평화포럼은 30일 제주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평화의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다크투어리즘과 평화운동: 전쟁·분단의 역사와 기억’ 세션을 진행했다. 

 

세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역사적 비극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이 평화 분위기 조성에 미치는 가능성과 한계를 논의하고, 제주4․3과 비무장지대(DMZ) 등 한국의 아픈 역사가 서린 장소들을 평화교육과 평화운동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사회는 김연철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이 맡았다.

 

김잔디 ㈔제주다크투어 사무국장은 역사 교육이 말하는 기록은 기득권의 입장에서 쓰였다며 “약자의 역사도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내가 아는 게 다 사실은 아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함께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김 사무국장은 제주 다크투어가 평화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흑백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열린 자세로 대화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다크투어리스트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한 로빈 웨스트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류와 다크투어리즘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한국을 방문한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다크투어리즘의 주요 장소를 경험하면서 한국의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웨스트 교수는 “한국은 민주화 운동이나 제주 4.3사건 등 강력한 과거가 있는데, 관광객은 이런 고통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한다”며 “다크투어리즘은 이들이 문헌이나 예술을 통해 과거 사건을 다시 목격하고 추모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의 4·3평화공원과 광주 5.18공원이 단순히 과거의 잔혹한 역사를 선정적으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과거사 정의와 기억을 재구성한다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제주포럼 제공

박영균 건국대학교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는 ‘다크투어리즘과 DMZ’ 발표를 통해 DMZ를 바라보는 안보주의, 생태주의, 경제주의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 평화의 가치에 주목하는 인문학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파로호’나 ‘펀치볼’처럼 냉전 시대의 흔적이 남은 명칭 대신, 본래의 이름인 ‘화천호·대붕호’, ‘해안분지’라는 표현을 회복해 DMZ가 치유와 화합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다크투어리즘의 장점으로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꼽았다. 기존에 학습된 내용과 다른 사실을 가르치려고 하면 저항을 일으키지만 다크투어리즘은 스스로 목격하고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생각의) 변화는 한번에 일어나지 않고 반복성 속에서 중첩돼서 일어난다. 그래서 물들게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다크투어리즘이 활성화된 원인이 ‘제도화된 기억’ 혹은 ‘제도화된 장소’에 포박된 역사 기억을 다시금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서 전유하고 현재성과 미래성을 담은 새로운 기억으로 만들어내려는 시도인지, 역사와 문화의 대화로서 다시금 제도권의 기억으로 편입시키는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원태 제주도 중앙협력본부장은 “이번 논의가 다크투어리즘이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 보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면서 “제주가 다크투어리스트들이 즐겨찾는 새로운 역사의 현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