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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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논란 터지면 지역도 함께 ‘들썩’…지자체 ‘인물 마케팅’, 특효약 아닌 독약? [뉴스+]

“대중들 평가 매번 달라져 위험
충분한 고민 후 사업 진행해야”

31일 오전 대구 서구 비산동 대성초등학교 앞.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의 모교인 이 학교 담장에는 그의 얼굴 등 그림과 ‘태형아 보라해(사랑해)’라는 글귀가 여러 나라 언어로 쓰여 있다. 주위를 둘러봐도 딱히 표지판이 없어 이곳이 BTS 팬 아미(ARMY)에게 ‘뷔의 성지’로 불리는 곳인지 알기 어려웠다. 벽화 거리를 지나가던 한 60대 주민은 “자주 이 길로 다녀 유명인 벽화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누군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대구 서구 BTS 뷔 벽화거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거리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구 서구 제공

BTS 멤버 뷔와 슈가가 자란 곳이 바로 대구다. 서구에는 뷔 벽화 거리가, 남구에는 슈가 벽화 거리가 조성됐다. 뷔 벽화 거리는 2021년 12월 중국 팬클럽이 뷔 생일을 맞아 30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 소속사도 이를 허용했다고 한다. 이어 대구 서구가 추가로 3500만원을 들여 거리를 확장했다. 벽화는 높이 2m, 길이 60m에 달한다.

 

하지만 대구시와 서구, 남구 등 해당 지자체는 벽화거리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고 있다. BTS 소속사 측이 퍼블리시티권(초상 사용권)을 들어 반대하고 있어서다. 퍼블리시티권은 연예인·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이 얼굴이나 이름 등을 동의 없이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서구 관계자는 “소속사가 벽화 거리를 조성하는 것은 허락했지만 이를 관광 명소화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보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지자체가 충분한 고민 없이 유명인을 앞세운 마케팅 사업을 벌여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자체를 알리거나 관광객을 유치하는 효과인 ‘특효약’일 수도 있지만, 해당 유명인이 사회적 물의라도 일으키면 지자체 명성에 '독약'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중적 특성을 명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 군위군에 따르면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과 촬영한 지역 홍보 영상을 활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홍보비 7200만원의 집행 계획도 취소했다. 앞서 군은 지난달 피식대학 출연진과 지역 곳곳을 소개하는 30여분 길이의 홍보 영상을 촬영했다.

 

코미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게시한 경북 영양 영상. 피식대학 유튜브 캡처

하지만 최근 피식대학 출연진들이 경북 영양군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지역을 비하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며 영상 활용 여부를 고심해왔다. 군의 홍보 계획이 알려지며 온라인상에서 예산 사용을 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피식대학 측은 논란 일주일 만인 18일 사과문을 올리고 문제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다. 피식대학 측은 “저희의 미숙함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께 사죄의 말씀 드린다”며 “해당 지역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력에 대해 깊게 숙고하지 못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 이후에도 여파는 계속 이어지며 피식대학의 구독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최근 음주운전 뺑소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김호중씨의 모교 쉼터인 ‘김호중 소리길’에 설치한 ‘트바로티 집’ 현판도 결국 철거됐다. 김천예고 관계자는 “어제 트바로티 집 현판을 비롯한 김 씨와 관련된 것들을 모두 제거했다”며 “트바로티 집이었던 누각은 학생 쉼터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수 김호중씨를 상징해 김천시가 조성한 관광 특구 거리. 연합뉴스

김호중길은 2021년 김천시가 2억원을 들여 김씨 모교인 김천예술고등학교 인근 골목 100m에 조성했다. 김씨 팬클럽 상징색인 보라색과 김씨 벽화, 노랫말 등으로 꾸며진 해당 길은 김씨의 팬클럽이 방문하며 지난해 방문객은 최소 10만명 이상으로 집계됐다. 인근 상가들은 김씨의 팬들 방문에 매출 상승효과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김씨 구속 후 철거 민원이 빗발치자 해당 길과 더불어 인근 상가 방문객도 줄었다.

 

최정수 경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실 실장은 “유명인 마케팅 등 특정 인물에 관련된 사업은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그때그때 달라지기 때문에 위험 요소가 있다”며 “지자체에서 세금을 들여 사업을 하는 만큼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김덕용 기자 kimd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