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국 동시 촛불집회를 열고 정부를 상대로 ‘큰 싸움’을 예고한 대한의사협회(의협)가 2025년도 수가(酬價·의료서비스 대가) 협상이 결렬된 뒤 “향후 발생할 의료혼란의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고 경고했다.
1일 의협은 ‘2025년도 수가협상 거부 선언문’을 내고 “필수의료만은 살려보자는 제안을 철저히 무시한 채 무늬만 협상인 ‘수가통보’를 고집하는 정부와 건보공단 재정운영위원회의 실망스러운 작태에 환멸을 느끼며 내년도 수가협상 거부를 엄숙히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협은 “지난 30일 전국 각지에서 1만여 명 의사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정부가 한국 의료에 사망 선고를 내린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고 강력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이어진 수가 협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의료에 사망 선고를 감행한 정부의 악독한 만행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이번 수가협상 선결조건으로 ‘행위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 철회, ‘협상 전 밴드(추가소요재정)’ 선공개 등을 요구했지만, 건보공단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행위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은 현재 행위별 수가에 곱해지는 ‘환산지수’를 필수의료 등 저평가된 의료행위에 한해 더 올리겠다는 뜻이다. 의협은 현재 원가 미만의 수가에 행위 유형별 수가를 왜곡시켜 진료과목 간 갈등을 유발하는 ‘행위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 논의를 협상 과정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건보공단에 요구해왔다. 의협은 지금도 수가는 어느 진료과이든지 원가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정부가 모든 진료과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의협은 “건보공단은 이리저리 회피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고 재정운영위원회의 꼭두각시 역할을 수행했다”면서 “협상 마지막 날까지 우리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고 수가결정 구조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의지조차 보이지 않은 채 이거라도 받으려면 받고 아니면 말라는 식으로 통보하는 등 재정운영위원회의 하명을 전하기에 급급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의협은 “필수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차 의료기관의 왜곡된 수가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필수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특정 분야 수가만 인상하겠다는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을 고집하는 정부의 땜질식 의료개혁은 얼마나 사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 허구에 불과한 주장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 박민수 차관은 ‘의료개혁을 차질 없이 완수해 국민 건강 개선의 성과로 보여주겠다’고 수 차례 언급했지만, 수가통보를 반복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과 무책임한 태도를 면면히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현재의 의료 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이 책임지는 자세는커녕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수가정상화를 또다시 도외시했다”면서 “의료인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모든 제도 개선은 결국 의료개혁이 아닌 의료 파멸로 귀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의협은 “정부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결정과 일방적인 고집불통 수가통보를 재차 강력 규탄하고 향후 발생하는 일련의 의료혼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공단과 정부 당국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의협과 건보공단은 지난 31일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를 열고 내년도 의원급 수가 2차 협상을 가졌지만 결렬됐다. 올해로 3번째다. 협상이 결렬되면서 건강보험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내달 말까지 유형별 수가를 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