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절차에 착수키로 2일 결정한 것은 “추가 도발 시 감내하기 힘든 조치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음에도 북한이 하루 만에 2차 ‘오물 풍선’을 날린 데 대한 강경책이다.
이날 군에 따르면, 대북확성기는 최전방 지역 10여곳에 고정식으로 설치돼 있었고 이동식 장비도 40여대가 있었다. 2018년 4월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 따라 고정식 확성기는 철거됐지만 인근 시설에 보관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군 관계자는 “군은 전방 지역에서 언제든 대북 방송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해둔 상태”라고 했다. 철거됐던 확성기는 3일 재빠르게 복구될 전망이다. 방송이 결국 재개된다면 2018년 중단 이후 6년만이다.
대북확성기 방송은 남북 관계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다. 1963년 서해 부근 휴전선 일대에서 처음 시작된 대북확성기 방송은 1972년 7·4 공동선언과 2004년 6월 4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 이후 전면 중단되기도 했지만 북한의 심각한 도발이 있을 경우 재개됐다.
북한은 북한 체제 비난과 남한 체제의 우월성, 남한 대중가요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일선 군인들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2015년 8월에 있었던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도발 이후 우리 군이 대북확성기 방송을 11년 만에 재개하자 곧바로 남북 간 고위당국자 접촉이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을 포함한 ‘8·25 합의’를 도출했는데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대남 풍선을 날린 것만으로 대북확성기 카드를 꺼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대북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안으로 현 시점에 유효한 카드 중 하나이면서도 위험한 카드”라며 “우리가 강경하게 나가면서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의 전략이 꼬여버릴 수 있다. 다만 대북 방송을 하면 위기감이 고조되고 매우 시끄러워질 수 있으니 운용의 묘를 잘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대량의 대북전단을 날리는 것도 검토해볼 만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방치하는 ‘우회적’ 대응 가능하다. 대북전단 금지법은 위헌 결정이 났지만 여전히 정부엔 단체를 설득하거나 행정력으로 통제할 방법이 있었다.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해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이날 세계일보에 북풍이 불면 대북전단 살포를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이 지난 28일 이후 남측으로 날려 보낸 대남 풍선의 개수는 1000여개로 파악됐다. 현재까지 풍선에서 위험물질 등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재차 살포한 1, 2일 전국 곳곳에서 신고가 잇따랐다. 지난달 28일 오후 9시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오물 풍선 관련 112신고가 860건 들어왔다. 물체 발견 신고가 581건, 재난문자 내용 등 관련 문의 신고가 279건이다.
서울시는 수도방위사령부·서울경찰청·서울소방재난본부와 연계해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며 대응 중이다. 경기는 고양·파주·부천·안양 등지에서, 인천은 미추홀·부평·서·중구 등지에서 밤사이 신고가 이어졌다. 2일 오전 10시22분 경기 안산시 단원구 한 빌라에서는 북한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풍선이 떨어져 주차돼 있던 승용차 앞유리창이 파손됐다.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 떨어진 대남풍선 잔해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당국이 화재 진압 후 잔해를 확인한 결과 기폭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날 오전 8시30분쯤 경기 부천시 오정구 대장동에선 트럭 인근에 떨어진 오물 풍선 2개 중 1개가 폭발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날 이른 아침 인천국제공항에 오물 풍선이 떨어져 오전 7시부터 18분 동안 출발과 도착편 운항이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오물 풍선을 제거한 뒤 항공기 운항을 재개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서 매일 우리 쪽을 향해 위성항법장치(GPS) 전파 교란 공격도 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전 5시50분부터 31일 오후 5시까지 발신지가 북한의 강령·옹진 지역으로 추정되는 GPS 전파혼신 신고 건수는 총 932건(항공기 201건·선박 731건)이었다.
북한의 이런 도발은 실제 무력 충돌이나 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정도의 모호한 수준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를 높이는 회색지대 전술로 풀이된다. 회색지대 전술로는 해킹이나 소규모 테러, 가짜뉴스 유포, 국가 기간시설 파괴, 사회 혼란 등이 있다. 당장은 한·미의 맞대응을 초래할 위험은 낮추는 수준의 도발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지만 점차 도발의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성 발사 실패로 인한 어수선한 내부 분위기를 다잡고 미국과 협상을 재개하기 전 한반도 위기감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현재까지 대남 오물 풍선에 대해 격추 등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