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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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대북확성기 ‘감내’ 어려웠나… 돌연 “쓰레기 살포 잠정 중단” [뉴스+]

北 오물풍선에… 대북 확성기 3일 설치
정부 ‘지저분한 도발’ 대응 나서

주말 주택가 등 720개 날아와
대통령실 “北 감내 힘든 조치”
빠르면 3일 국무회의 통해

北 도발 의도는
김정은 1월 최고인민회의서 심의 지시
5·24 정치국 회의에서 군사 과업 제시
28일 오물 풍선 등 강경 담화·도발 실행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 등 최근 이어진 도발에 대해 대통령실이 2일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절차 착수 뜻도 분명히 했다. 이르면 4일 국무회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 등 무효화 절차를 밟은 뒤 곧바로 방송을 재개하는 안도 거론된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긴급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를 주재한 뒤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의에서 특히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와 GPS(위성항법장치) 교란 행위는 정상 국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몰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인 도발 행위이고, 북한 정권이 이런 저열한 도발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실제적이고 현존하는 위협을 가함으로써 국민의 불안과 사회 혼란을 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라며 “회의 참석자들은 지난달 31일 정부 입장을 통해 예고한 대로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들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물 풍선 또는 GPS 교란 같은 도발을 다시 하지 말란 점을 북한 측에 다시 한 번 경고한다”며 “반복될 경우 우리의 대응 강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일환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해 3일 확성기를 설치키로 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확성기 재개 문제에 대해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며 “확성기 재개를 배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당연히 취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이를 금지하는 9·19 남북군사합의와 남북관계발전법상의 관련 조항 등을 무효화해야 가능하다. 북한은 지난해 11월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3차 발사에 대응해 9·19 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 조치를 취하자 9·19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차 유리 와장창… 전국서 피해 속출 2일 오전 10시22분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빌라 주차장에 떨어져 주차돼 있던 승용차 앞 유리창이 파손된 모습.(왼쪽) 승용차에는 아무도 탑승하지 않아 인명피해는 없었다. 오른쪽 사진은 1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한 아파트 정문 화단에 오물풍선이 떨어져 신고를 받은 군과 경찰이 출동해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 고양=뉴시스, 뉴스1

정부는 법적 장애물을 먼저 해소한 뒤 곧바로 확성기 방송 재개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4일 국무회의에서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조치 시점에 대해 “가까운 시일 내에 (조치들이) 구체화할 것”이라며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하겠다. 굳이 더 시간 끌 생각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28, 29일 오물풍선 260여개를 날려 보낸 데 이어, 1, 2일 약 720개 오물풍산을 또다시 보내왔다. 지난달 28일 오후 9시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오물 풍선 관련 112 신고는 총 860건 접수됐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GPS 전파 교란 공격도 닷새째 일으켰다.

대통령실이 확성기 재개에 착수한다는 입장을 공개한 지 약 4시간만에 북한은 일단 “쓰레기 살포를 잠정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강일 국방성 부상은 이날 오후 10시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한국 것들에게 널려진 휴지장들을 주워 담는 노릇이 얼마나 기분이 더럽고 많은 공력이 소비되는지 충분한 체험을 시켰다”며 “한국 것들이 삐라 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다시 집중 살포”하겠다고 했다. 김 부상은 휴지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500여개로 살포했다고 덧붙였다.

 

2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전망대에서 시민들이 북한 개풍군 지역을 보고 있다. 뉴스1

◆ 北 영토·영해·영공 헌법 개정 앞두고, 서해 경계 획정 분쟁화 포석 가능성

 

최근 북한의 육·해·공에서의 도발 엄포가 북한의 영토·영해·영공 경계 확정을 담은 헌법개정과의 관련성이 주목된다. 특히 군사분계선이 명확한 육상과 달리, 남북관계 악화 시마다 ‘화약고’로 떠올랐던 서해에서 일방적으로 해상경계를 획정, 분쟁화하려는 포석으로 위력시위 가능성도 우려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우리 국가의 남쪽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토, 영해, 영공에 대한 정치적 및 지리적인 정의를 헌법 개정안에 담아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하도록 지시했다. 지난달 24일 북한은 당 중앙위 정치국회의를 열고 이달 하순에 당 전원회의를 소집한다고 결정했다. 정부는 최고인민회의도 6월 하순 당 전원회의 직후에 열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근 집중된 잇단 도발은 5·24 당 중앙위 정치국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여, 6월 하순 전원회의까지의 정치 및 군사 계획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이 당시 정치국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의 보고를 받고 군사활동 과업을 제시한 다음날부터 위협적 담화와 군사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국회의 바로 다음날 나온 김강일 국방성 부상 담화에선 △한·미 공군의 정찰활동 △한·미 해상활동 △대북전단을 문제 삼으면서 ‘맞대응’을 예고했고 28일부터 ‘오물 풍선’이 실행으로 옮겨졌다.

 

2일 경기도 시흥시 한 쇼핑몰 주차장에서 관계자가 북한이 살포한 것으로 추정되는 오물 풍선 잔해를 수거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국방성 부상 담화에선 “한국 해군과 해양경찰, 각종 함선의 해상국경선 침범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계속 침범한다면 어느 순간 수상에서든 수중에서든 자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NLL(북방한계선)을 남북 경계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해온 북한은 그간 남북 군사회담에서 여러 안을 내놓았지만, 이번에 북한이 말하는 “해상국경선”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밝히진 않았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GPS를 교란하는 것은 서해상에서 우리 측 어선이나 경비정의 GPS에 혼동을 줌으로써 향후 북한의 해상 도발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NLL무력화 도발이 워낙 민감한 문제인 만큼 당장의 가시적 대응보다 GPS교란 정도로 대남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센터장은 2일 “한·미공중정찰, 해상, 대북전단을 문제 삼은 것은 세 분야에서 앞으로 도발강도가 강해질 가능성을 예고한다”며 “공중정찰은 최근 초대형방사포 연쇄도발로 대응했고 전단도 대남 오물풍선으로 대응했지만, 서해는 훨씬 민감한 문제”라고 했다. 그는 “해상 국경선을 명확하게 밝히는 순간 국경을 수호하기 위한 해군력과 군사대비태세를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연쇄 도발의 이유에 대해 최근 대북전단에 북한 지도부가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거나 이달 하순 당 전원회의에서 상반기 총화를 앞두고 군사분야에서 대적활동 성과를 올리기 위한 목적, 감정적인 대남 불만표출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지원·구현모·이정한·김예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