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남부 국경을 사실상 걸어 잠근다. 집권 후반기 국경 강화 정책으로 점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닮아간다는 비판을 듣던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지금까지 중 가장 공격적이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슷한 방식으로 국경을 막은 것이다. 이 행정명령은 법률 문제로 사법적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민 정책에서 수세에 몰리면서 상징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3일(현지시간) CNN,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바이든 대통령이 4일 불법 이주민 대응과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한다며 이에 앞서 의회에 세부 내용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행정명령은 불법 이주민 숫자가 일주일 단위로 하루 평균 2500명이 넘을 경우 불법 입국자의 망명 신청을 차단하고 입국을 자동으로 거부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국경에 도달하는 불법 이주민 숫자가 하루 평균 1500명으로 줄어들면 국경은 다시 개방된다. AP통신은 현재 남부 국경의 불법 이주민 숫자는 하루 평균 2500명이 넘는다며 이번 행정명령이 발동되면 국경은 즉각 폐쇄될 것이라고 전했다.
CNN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행정명령은 이민법 202(f) 조항에 근거한다. 이 조항은 미국 대통령에게 국익에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 외국인 이민자 또는 비이민자 등의 입국을 중단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이 조항을 활용해 이민을 통제했다. 이를 비판한 바이든 대통령이 같은 조항을 통해 이민을 통제하는 것이다.
WSJ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행정명령을 준비한 지 오래됐으나 시행하지 않고 있다가 그의 이민 정책에 대한 불만이 유권자들 사이에서 증폭하고, 대선 최대 정책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이번 조치를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민 정책은 미 대선에서 가장 큰 정책 이슈로 판명됐으며, 애리조나 등 일부 경합주에서는 승패를 가르는 첨예한 이슈다.
이번 행정명령은 법정에서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고, 또 법률적 검토를 간신히 통과하더라도 의회의 대규모 자금 투입 없이는 이행이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지만 불법 이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은 것이라고 WSJ는 평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등 불법 이민 문제에 대해 선명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면서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종차별주의자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지만 불법이민 문제에 단호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도층을 공략하는 이 같은 정책이 바이든 대통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이민자들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가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시에나대와 공동으로 애리조나와 조지아, 미시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6개 경합주 등록 유권자 40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지난달 1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서 동률의 지지를 기록했다. 히스패닉계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지난 대선과 비교하면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편 이날 바이든 대통령의 차남 헌터 바이든의 총기불법 소유 혐의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헌터는 마약 중독 사실을 인정했는데, 마약 중독자의 총기 소지는 미국에서 불법이다. 이번 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 재판과 함께 바이든 대통령 측의 사법 리스크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나는 대통령이지만 또한 아버지이기도 하다”며 “나는 내 아들에 무한한 사랑과 신뢰, 그의 강인함에 대한 존경심이 있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에는 질 바이든 여사가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