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밀양에서 발생한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최근 다시 조명을 받는 가운데, 범죄를 주동한 남성이 딸에게 한 약속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딸에게 “믿음직한 아빠가 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여성 미성년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본인이 몸소 알고 있기 때문에 방어 심리로 나온 극도의 이기적인 언사”라고 분석했다.
5일 이 교수는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 출연해 “(당시 사건을) 기억을 하기 때문에 더욱 '딸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됐을지도 모른다”며 이같이 밝혔다.
20여년 전 당시 울산의 한 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A양은 알코올 중독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해 집을 나갔다.
그러던 중 인터넷에서 알게 된 고교생 박모 군을 만나러 밀양에 갔다가 박군의 선·후배 고교생들에게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이들 주동자들은 A양을 유인해 쇠 파이프로 내리쳐 기절시킨 후 함께 성폭행했다. 또 그 모습을 캠코더와 휴대전화로 촬영해 협박에 이용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저질러진 범행에 가담한 밀양 고교생은 무려 44명에 이른다.
A양은 수면제 20알을 먹었으나 이틀 만에 깨어났고, 울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런 참혹한 범죄를 직접 주동했고 이를 지금도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딸에 대한 보호심리가 커졌다는 게 이 교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성범죄자는 가해 행위가 피해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 당시에도 이 지역에서 '울산에서 온 얘가 이상하다' 피해자 책임론 같은 게 만연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가 다수인 경우에는 '얘도 했고, 쟤도 했고, 그랬는데. 내가 한 게 유달리 특별하냐' 이런 식으로 책임이 분산되고 공동화됐을 것”이라며 “당시 제일 큰 문제는 피해자를 비난했던 가해자 부모들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당시 가해자 중 한 명의 부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왜 피해자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하나”라며 “왜 그래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 피해 입은 건 생각 안 하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피해자 부모를 향해 “딸자식을 잘 키워야지. 그러니까 잘 키워서 이런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지”라고 2차 가해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가해자 부모의 이런 태도가) 결국 자기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20년이 지나 자신의 아이들을 사적 보복을 당하는 대상자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 당시에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 지금까지 후유증을 유발한다”며 피해자를 구제할 제도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구제를 못 해준 피해자가 현존한다면 제3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같은 펀드 등 사적 구조를 통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가해자가) 기부를 해 뒤늦게라도 용서를 받게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실제 국민들은 집단성폭행 사건에 개입된 가해 학생 44명 중 단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고, 이후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을 사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당시 검찰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10명만 기소했고, 울산지법이 2005년 4월 기소된 10명에 대해 부산지법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다만 사적 제재는 논란의 대상이다. 밀양 사건을 재조명한 유튜버는 전날인 4일 “관련자들로부터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이처럼 일반인 신상 털기가 잇따르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각종 개인정보를 찾아볼 수 있고, 검색도 비교적 수월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대 범죄자인 경우 신원을 보호하는 게 합당하냐는 시각도 있다. 다만 사적 영역에서 특정인의 신상이 낱낱이 유포될 경우 자칫 사건의 본질과 관련 없는 선정성을 부추길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무분별한 사적 제재는 2차 피해나 공권력의 약화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절제와 감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