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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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가해자 ‘각별한 부성애’?…이수정 “미성년女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알고 있기 때문”

솜방망이 처벌…‘사적제재’ 논란 점화
“사법 정의의 국민 신뢰 깨졌기 때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주동자로 지목된 남성이 자신의 딸을 향한 각별한 부성애를 드러낸 데 대해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5일 "대한민국에서 미성년 여성들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본인이 몸소 알고 있기 때문에 딸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밀양 집단 성폭행은 2004년 12월 밀양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밀양으로 꾀어내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가해자 중 10명(구속 7명·불구속 3명)을 기소했다.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내려졌다.

 

부산지법 가정지원은 2005년 5월 23일 이 사건 가해자 5명에 대해 장·단기 소년원송치결정을 내렸다. 당시 가해자들은 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았는데 한명은 장기소년원송치결정(7호 처분)을,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단기소년원송치결정(6호 처분)을 받았다.

 

7호 처분은 2년 이내, 6호 처분은 6개월 이내의 미성년자 교정시설 수감에 해당하는 형이다. 함께 송치된 5명에 대해서는 장기보호관찰과 함께 80시간의 사회봉사활동 및 40시간의 교화프로그램 수강명령이 내려졌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한 경찰관이 조사받던 피해자에게 '밀양 물 다 흐려놨다'는 식으로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이날 매일신문 유튜브 '이동재의 뉴스캐비닛'에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주동자로 지목된 A씨가 딸을 향해 '아빠가 지켜줄게' 등 부성애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진행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사건을 기억하기 때문에 더더욱 딸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가 된 것으로 보인다"며 "자기 딸만큼은 지키겠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딸을 방어하겠다는 심리는 그의 과거 범행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다만 이 교수는 사법 기관의 공적 제재가 아닌 민간에 의한 사적 제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가해자들에게) 형법이 아닌 소년법을 적용했다는 부분에서는 문제 제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소년법을 적용한 사건에 대해서도 이렇게 두고두고 신상이 까발려지면서 사회적으로 적응을 못 하게 만드는 게 적합하냐는 문제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법률에 따라 처분된 결과물에 대해 이렇게 계속 번복하는 게 적합할까. 사적 보복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 당시 사회적 규범으로도 (밀양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판결이) 아주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도 않다. 당시에는 17~18살에 소년법을 적용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지금 눈으로 보니까 그 당시 규범이 틀렸다는 게 문제"라며 "지금 와서 이 사건을 기준으로 소년법으로 처분받은 애들까지 전부 전과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유튜버 '나락 보관소'가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 가담한 44명의 가해자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발표하며 가해자 공개에 대해 피해자 가족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나락 보관소는 유튜브 게시판을 통해 "제게 '(가해자 공개에 대해) 피해자에게 허락을 구했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많다"며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 나눴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저를 돕겠다며 가해자들의 신상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며 "감사하지만 이건 엄연히 '크로스체크'가 되어야 하는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다른 가해자들의 신상을 올리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와 팩트체크 한 번만 더 하시고 올리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에 밀양 피해자 지원단체 중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채널에서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가해자를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첫 영상이 게시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영상 업로드된 후 지난 3일 영상 삭제 요청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 가족이 동의해 44명 모두 공개하기로 했다는 공지에 대해 삭제, 수정할 것을 재차 요청했으나 (채널 측이) 정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피해자 측은 피해자의 일상 회복, 피해자의 의사 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럽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나락 보관소'는 피해자 가족이 동의했다는 공지를 삭제하고 상황을 바로잡기를 바란다"고 재차 요구했다.

 

이처럼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가 법적 테두리를 벗어난 사적제재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호응하는 데에는 '피해자는 고통 속에 사는데 가해자는 잘 산다'는 사실에 대한 국민적 공분에, 범죄자를 단죄하는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신상 공개가 형법상 명예훼손 또는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소지가 있고 자칫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혹은 진위가 불분명한 정보일 경우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가해자 위주로 짜인 현행 사법 체계를 피해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질적인 '솜방망이 처벌'을 막기 위해 양형 기준을 대폭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더러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