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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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달라진 프로야구 응원문화

“애들을 데리고 야구장에 가려고 하는겨?”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보러 갈까 생각 중’이라는 말에 아버지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TV도 큰 걸 사 놓고 뭣 하러 야구장에 가느냐, 야구장까지 집에서 한참 걸리지 않느냐, 어차피 질 거 가서 뭐하느냐 등 충청도 화법으로 강한 반대 의견을 냈다.

정필재 문화체육부 기자

“표 사는 데 얼마나 보태 줄라고 그러는겨?”

굽히지 않고 내 의사를 표현하자 아버지께서 ‘예전에 말이여’라며 함께 야구장에 갔던 일을 꺼냈다. 그렇게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야구장에서의 아버지와 추억 한 조각이 떠올랐다.

1992년 초등학교 3학년이던 그때, 처음 갔던 야구장은 정글처럼 느껴졌다. 부엉이들은 노을을 배경으로 펜스 위에 줄지어 앉아 경기장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무리 지은 사자들은 관우처럼 뻘건 얼굴로 선수들을 향해 으르렁댔다. 나무를 타고 담장을 넘어 관중석에 들어오는 원숭이는 물론, 팬들의 통행로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오징어를 뜯는 두더지로 경기장은 가득했다.

그 시즌 한국시리즈에서는 무서운 일도 벌어졌다. 압도적인 모습으로 통합우승에 도전하던 빙그레가 롯데에 1, 2차전을 모두 진 뒤였다. 빙그레가 한국시리즈에서 10연패를 당하던 그날 굶주린 짐승들은 선수단 버스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화가 많이 나면 저렇게 할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서둘러 공설운동장을 빠져나갔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출범한 프로야구가 10년 차를 맞았던 그때 야구장은 어린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그렇게 울며 졸라도 아버지가 야구장에 데려다주지 않았던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다.

“이제 그랬다간 난리가 나요. 요즘에 말이여….”

정글에 득실대던 동물들은 멸종됐고, 컵라면을 3000원 받고 팔았던 그 시절 바가지요금도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 잔잔한 분위기를 상상하면 오산이다. 응원석에선 선수 개개인의 응원가를 숙지해 따라 불러야 한다. 열정적인 응원에 앉기가 민망할 정도다. 이런 한국 야구 응원 문화는 메이저리거(MLB)가 와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저스 무키 베츠 쌔리라’라는 응원가가 지난 4월 사상 처음으로 열린 MLB 정규리그 경기인 서울시리즈에서 울려 퍼졌다. 달라진 야구장 분위기에 대해 입 아프게 설명해도 아버지는 여전히 경기장 가는 게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어쩌다 야구장이 이렇게 달라졌을까.

야구장 문화를 바꿔 놓은 건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나만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덕분에 응원하는 팀이 다른 3대가 찾아와서 신나게 놀다 떠날 수 있는 곳이 됐다. 이런 야구장을 찾은 팬들이 올해만 벌써 430만명을 넘어섰다. 이런 분위기에 올 시즌 프로야구는 1000만 관중 시대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5년 차 아빠를 맞아 각종 키즈카페가 지겨워지는 이 순간 야구장이란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다. 3대째 이어지는 사랑과 야구장에 대한 발길이 이어지길 바라본다.


정필재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