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영어교육도시 명품 주거단지를 내세우며 2021년 준공한 제주시 한경면의 한 공동주택. 준공한 지 3년이 넘었지만 90여 가구 중 절반만이 주인을 찾았다. 주택사업자는 “국제학교와 차량으로 10분 거리인 데다 전망이 좋아 모두 분양될 줄 기대했는데 고금리 등으로 외지인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다”며 “할인 분양을 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돈맥경화’로 시장이 얼어붙었다”고 하소연했다.
제주도 인구는 전국의 1.3%인데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전국의 10%를 넘어섰다. 제주살이 열풍 등으로 호황을 누렸던 제주도 부동산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6일 국토교통부의 ‘주택통계’에 따르면 제주 미분양 주택은 2485가구로 한 달 전보다 14.2%(352가구) 늘었다. 2021년 말(836가구)의 3배 수준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준공 후 미분양은 지난 4월 1241가구로 전체 미분양 주택의 44%에 달했다. 역대 가장 많다.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1만2968가구)의 10분의 1이 제주도에서 나왔다.
지역 부동산 관계자는 “미분양 통계가 30가구 이상 공동주택으로 집계하기 때문에, 30가구 미만 타운하우스 등을 포함하면 읍면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며 “외지 유입 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외지인과 투자자를 타깃으로 해 고분양가 정책을 쓴 탓도 있다”고 말했다.
미분양 주택이 속출하자 한 시행사는 분양가를 20%가량 낮추거나 계약 전 한 달간 살아보게 하고, 분양 대금을 가상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제주의 미분양 적체가 유독 심각한 건 부동산 경기 침체와 고분양가 영향이다. 지난 4월 한 달간 제주에서 주택 매매거래량은 514건으로, 같은 달 기준으로는 2010년(429건) 이후 1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4월 제주 주택 분양은 0건으로 집계됐다.
4월 기준 제주 민간아파트 평균 분양 가격은 3.3㎡당 2475만원으로, 전국에서 서울(3884만원)과 대구(3059만원)에 이어 세 번째로 높다. 전국 평균은 1770만원이다. 섬인 제주의 특성상 높은 물류비 등으로 건축비가 상대적으로 비싼 데다 10여년 전부터 투기 열풍이 불면서 제주 땅값이 크게 오른 영향도 있다. 4월 말까지 신규 건설수주액은 지난해보다 61.6%나 감소했다.
외지 유입 인구가 감소한 것도 원인이다. 제주 인구는 지난해 14년 만에 처음으로 1678명의 인구 순유출을 기록했다. 외지인 주택 구입 비율도 2021년 31.4%, 2022년 27.1%, 지난해 23.0%로 줄곧 감소 중이다.
제주도건설단체연합회 관계자는 “건설 경기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 제주신항만 건설 정상 추진 등 공공투자를 확대하고 투자유치 사업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미분양 사태가 심화하면서 신규주택 승인 제한과 공공 매입, 승인 취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