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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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AI 변호사’ 갈등

“변호사가 1년 걸려 할 일을 1분이면 해결한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 ‘아이 아보카(I.Avocat)’라는 인공지능(AI) 변호사 앱이 출시됐다. 이용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입력하면 법률 조언을 해주는 방식이다. 연간 10만원대 이용료에도 출시 열흘 만에 2만여 명이 앱을 다운받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파리지방변호사회는 “자격 없이 변호사 업무를 대신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결국 프랑스어로 변호사를 뜻하는 ‘Avocat’를 빼고 ‘아이 리걸(I.Legal)’로 앱 이름이 바뀌었다.

AI 변호사와 인간 변호사 간 대결도 벌어진다. 작년 3월 미국 일리노이주의 로펌 밀러킹(MillerKing)이 온라인 법률서비스 기업인 ‘두낫페이(DoNotPay)’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AI 변호사를 활용한 허위 광고 등으로 로펌들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 하지만 일리노이 남부지방법원은 밀러킹의 소송을 기각해 AI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두낫페이로 인한 손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두낫페이가 밀러킹의 직접적인 경쟁자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은 이미 AI 유료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AI대륙아주’는 지난 3월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 AI 기반의 법률 Q&A 챗봇이다. 누구든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대화창을 열고 소송·법률 관련 문의를 하면 24시간 답을 해준다. 국내 10대 로펌 중 하나인 법무법인 대륙아주가 축적한 법률 데이터가 바탕이 됐고, 변호사들이 1만여 개 질문과 모범답안을 만들어 AI에게 학습시켰다. 수임 사건 판례나 법률을 분석하는 데 초보 변호사들이 사나흘 걸렸던 리서치 업무가 몇 분이면 끝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최근 “AI가 변호사 업무를 하는 건 불법”이라며 대륙아주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다. 변호사가 아닌 AI가 변호사 업무로 돈을 벌면 변호사법 위반이고, AI의 답변 하단에 광고가 노출돼 로펌이 직간접적으로 이익을 얻으면 ‘변호사 광고 규정’ 위반이라는 것이다. 변협이 법률서비스 플랫폼인 ‘로톡’에 이어 리걸테크와 2차전을 벌이는 것이다. 소비자 편익을 무시한 집단이기주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런다고 AI 혁신 물결을 막을 수 있을까.


채희창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