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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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韓, 우크라에 무기 제공 안 해 감사” 푸틴 노림수 경계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제 외신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 점을 거론하며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러 양국 관계 발전에 관심이 있다”고도 했다. 악화한 한·러관계를 관리하려는 의지를 내보인 점은 평가할 만하나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북한과의 군사적 밀착을 가속하면서 한국에 손을 내민 러시아의 진짜 노림수가 무엇인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후 한국은 자유진영 일원으로서 러시아를 겨냥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중이다. 지난해 7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전후 재건 노력 동참 등을 약속했다. 이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고 적대적 태도를 취해 왔다. 올해 3월 러시아 당국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민 구호활동을 하던 한국인 선교사를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와중에 푸틴 대통령이 한·러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것은 일견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문제는 러시아의 이런 태도에 진정성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러시아는 지난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군사협력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올해 들어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전문가 패널 활동 기간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대북 감시망을 허물었다. 실패로 끝나긴 했으나 최근 북한이 발사를 시도한 군사정찰위성 2호기는 러시아로부터 넘겨받은 기술이 대거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번 기자회견에서도 푸틴 대통령은 “북한과 관계를 발전시킬 것”이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국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손을 굳게 잡은 러시아가 한·러관계 개선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 아닌가.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되 무기 공급에는 선을 긋고 있다. 바로 그 점을 들어 러시아가 고마움을 표시한 것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는 다른 서방 국가들과 한국 사이에 ‘갈라치기’를 시도한 것이란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외교·안보 당국은 이를 경계하면서 러시아의 향후 행보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또 대러 외교에서 ‘북한과의 밀착 및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만이 진정한 한·러관계 개선의 길’이라는 원칙론을 견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