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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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원죄의식이 만든 서구의 ‘이·팔 이중잣대’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일란 파페/ 백선 옮김/ 틈새책방/ 1만9000원

 

지난해 10월 ‘알아크사 홍수’로 불리는 하마스의 무장 공격으로 이스라엘에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베냐민 네타냐후가 이끄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침공해 보복작전 ‘칼의 전쟁’을 감행했다. 그 결과 가자지구 내에서만 3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망자 대다수는 어린이와 여성, 노인 등 민간인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을 연일 국제뉴스로 접한다. 대체로 팔레스타인의 테러 도발과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 응징이라는 익숙한 구도로 전해진다. 하지만 작금의 사태가 제2차 대전 당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수준을 능가하는,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감옥 속에서 인종청소가 벌어지고 있다는 진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 급기야 전쟁범죄를 담당하는 국제형사재판소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물론 영장이 집행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일란 파페/ 백선 옮김/ 틈새책방/ 1만9000원

피도 눈물도 없이 보복전쟁을 이어가는 이스라엘, 적당한 양비론을 펴면서 결국 진실을 외면하는 서구, 사건을 해결할 의지도 여력도 없는 국제사회. 특히 서구 사회는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침묵하면서 떠안게 된 원죄의식 때문에 1948년 건국 이후 이스라엘에 줄곧 지지와 연대를 보내는 한편, 팔레스타인의 항의에는 침묵하는 도덕적 이중성을 보여 왔다. 이 부조리한 현실과 구조적 모순의 밑바탕에는 왜곡된 신화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유대계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저자는 책 ‘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에서 “역사의 왜곡이 비판할 수 없는 신화가 되고, 이에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비극이 앞으로도 지속될 종족청소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며 사태와 관련한 10가지 왜곡된 신화를 뽑아내 역사적 맥락과 근거를 가지고 차례로 비판한다.

비판 대상 신화 10가지는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은 빈 땅이었다’, ‘유대 민족에게는 땅이 없었다’, ‘시온주의와 유대교는 같다’,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가 아니다’, ‘1948년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다’, ‘1967년 6월 전쟁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쟁이었다’(과거 신화 6개),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국가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 신화’, ‘가자 신화’(현재 신화 3개),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미래 신화).

저자는 특히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라는 미래 신화에 대해 “거의 150년이 된 민족해방 투쟁이 고작 국토의 20%에 대한 조건부 자치로 마무리된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며 더 확실하고 근본적인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결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팔레스타인 땅에서 식민지화되고 억압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신해 권력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는 또 하나의 전복적 시도로 읽힌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