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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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조차 몰랐던 탈북 소녀는 왜 학구열을 불태우나

어떤 불시착/ 정서윤/ 다른/ 1만6800원

 

“1998년 어느 날 열 살짜리 소녀 정서윤이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 숨어 살던 가족은 2002년에서야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제나저제나 탈북은 목숨을 거는 일이고, 남한 사회에 정착하는 일은 차별적인 시선 속에 소리 없이 눈물 흘리며 살아남아야 하는, 또 다른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러나 정서윤은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바르게 대한민국에 뿌리를 내렸다.”(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어느 탈북자의 처절한 탈출 스토리도, 고된 남한 정착 스토리도 아니다. 누군가의 특별한 성장 서사이자, 어떤 이들에게는 롤 모델이 될 만한 한 청년의 이야기다. 저자는 10살에 삼촌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넜다. 당시 북한에 몰아친 ‘고난의 행군’으로 굶주림이 덮치자 가족이 모여 내린 결단이었다. 가족은 함께 중국에서 4년간 불법체류자로 숨어 살아야 했다. 영민했던 10살 소녀는 중국어를 빠르게 익혔고 또래 집단에 잘 스며들었다. 덕분에 신분을 감춰야만 했던 가족에게 소녀는 세상과 자신들을 희미하게 연결하는 끈이었고, 때로는 어린 보호자였다.

정서윤/ 다른/ 1만6800원

14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남한 땅을 밟았다. 북에서 남으로 4년2개월이 걸린 셈이다. 2002년 월드컵으로 한국의 청년들이 광장에서 뜨겁게 축제를 즐길 때, 그는 국정원 시설에서 약 한 달간 조사를 받았다. 낯선 땅에 불시착한 듯 눈앞의 나라는 상상과 전혀 달랐다.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버티며, 혼돈의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때 비로소 자신들에 대한 수많은 편견과 혐오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같은 학년보다 2살 많았지만 한글조차 몰랐다. 학업에 대한 갈증, 떳떳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단 열망은 학구열로 이어졌다. 검정고시를 통과해 이화여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이어 북한학으로 석사 학위를 이수, 30대 중반인 현재는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저자가 이토록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는 자신의 배움을 탈북청소년을 위해 쓰고자 결심한 데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의 연구원을 시작으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 공무원, 남북 청년의 교류를 위해 직접 설립한 비정부기구(NGO) 유니피벗까지. 그의 행보는 한 번도 흔들림이 없다. 분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 갈라진 두 개의 한국을 잇는 일에 모든 열정과 시간을 바치고 있다. “때론 버겁고 힘들었지만 그 애매한 정체성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나와 같은 사람만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복진 기자 bo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