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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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성폭행’ 가해자 신상공개 후폭풍… 무분별 사적제재 둘러싼 논란 재점화

유튜버, 피해자 동의 없이 폭로 지속
“진정한 정의구현” 등 반응 쏟아져
피해자에 2차 가해 우려도 확산
“국가 사법체계 낮은 신뢰도 방증”

최근 한 유튜버가 2004년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사적 제재’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국민적 공분을 이용한 ‘조회수 장사’란 비판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당 유튜버는 ‘피해자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 단체 측이 ‘동의해 준 적 없다’고 반박하면서 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6일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에는 1일부터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정보를 담은 영상 4개가 올라와 있다. 해당 영상은 이들의 직장과 현재 모습 등을 소개한다. 조회 수가 300만회를 넘어선 영상의 댓글에는 “가해자가 영원히 고통받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정의구현이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그러나 이번 영상으로 피해자들이 뜻하지 않은 2차 가해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가해자와 연관된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일상회복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 역시 신상정보가 실제 맞는지도 불투명한 상태다. 실제 해당 영상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A씨는 영문도 모른 채 직장 등으로 온 협박과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A씨는 실제 해당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영상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나락보관소 측은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 나눴고 44명 모두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단체 중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나락보관소’가 첫 영상을 게시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피해자 측은 피해자의 일상회복, 의사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와 조회 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온라인 사적 제재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N번방 사건 때 등장했다가 폐쇄된 ‘디지털교도소’가 대표적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디지털교도소가 사법 시스템을 벗어난 사적 제재를 목적으로 개설돼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현행 사법체계를 부정·악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접속 차단’ 결정을 내린 바 있다. 2021년 4월 당시 사이트 운영자는 정보통신망법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앞서 처벌 사례가 있음에도 사적 제재 사이트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적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도 저하를 지적한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는 “결국 사적 제재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면서도 “그럼에도 이런 현상이 계속 반복되는 건 국가가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는 고등학생 44명이 온라인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을 1년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벌어졌다. 44명 중 단 한 명도 처벌받지 않고 전과기록이 남지 않아 논란이 컸다. 최근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공개되기도 했다. 


이예림 기자 yea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