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태조 왕건(918∼943)의 초상화를 모셨던 사찰 터, 고대 동아시아 해상 교류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이 사적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안성 봉업사지’와 ‘고성 동외동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안성 봉업사지는 고려 광종(949∼975) 때 왕권을 강화하고자 태조 왕건의 어진(왕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나 초상화)을 봉안한 사찰 터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에는 1363년 당시 왕이던 공민왕이 봉업사에 들러 태조 왕건의 어진을 알현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편찬한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절터에 석탑만 남아 있다고 기록돼 있어 학계에서는 봉업사가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한다.
봉업사지 일대에서는 1997∼2023년 총 5차례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보물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주변에서 발견된 청동 향로와 청동 북에서는 '봉업사'라는 글자가 확인됐으며, 절의 중심 영역과 어진을 봉안한 영역 등도 파악됐다. 또 제작 연대와 지명, 인명 등 60여 종이 넘는 정보가 기록된 기와도 출토됐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어진을 봉안한 진전 영역은 중심 건물지와 중정 주변으로 회랑(지붕이 있는 긴 복도)이 배치되는 등 고려시대 왕실 건축 양식이 잘 보존돼 있어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절터에는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과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경기도 유형문화유산)가 있고, 봉업사에서 인근의 칠장사로 옮겨진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을 비롯해 주변에 장명사지, 매산리사지, 장광사지 등 고려시대 사찰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고성 동외동 유적은 조개더미(패총)으로 잘 알려진 유적이다. 이 일대는 삼한의 고자국부터 삼국의 소가야 문화권에 이르기까지 고성 지역의 생활문화 중심 유적으로 꼽힌다. 여러 차례 발굴 조사를 통해 집터, 의례와 제사 터 등 다양한 흔적이 나왔다.
동외동 유적은 고대 동아시아 해상 교류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가유산청은 “남해안의 해양 교통 요충지에 위치해 삼한·삼국시대 등 고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네트워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 시기는 한반도 남부 지역에 있던 변한 소국들이 주변 집단을 통합해 보다 큰 정치체로 발전하던 전환기로, 대외 교류 활동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도 출토됐다.
중국 신나라의 화폐로 알려진 '대천오십'(大泉五十), 청동 거울, 낙랑계 가락바퀴, 당시 지배계층이 사용하는 청동 허리띠 고리 장식 등이 대표적이다.
구릉 형태의 지형을 쌓고 깎아서 계단식 방어시설을 만들고 구릉 꼭대기에 의례시설이나 광장, 주거군 등을 두고 감싸는 형태의 건축 흔적도 연구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유산청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안성 봉업사지와 고성 동외동 유적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