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 중인 아내와 장모의 대화를 가정용 폐쇄회로(CC)TV로 엿들었다며 고소당한 남성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CCTV를 적법하게 설치했고, 아내와 장모가 대화 당시 CCTV 설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이유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31부(재판장 박준석)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아내 B씨와 2018년부터 관계가 악화해 별거에 들어갔고 2019년 7월부터 이혼 소송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B씨는 A씨의 집으로 찾아와 다투다 어머니를 불렀고 A씨는 불편하다며 장모가 오기 전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A씨는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한 CCTV 화면에서 장모가 B씨에게 “조금만 더 버티면 재산분할을 왕창 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참으라”고 말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CCTV는 A씨가 반려견과 자녀의 안전을 위해 설치한 것으로 B씨와 장모도 CCTV 설치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장모는 이혼 소송 자료 수집 목적으로 대화를 엿들었다며 A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고 그에 따라 알게 된 대화의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A씨는 적법하게 CCTV를 설치했고 장모와 아내는 대화 당시 CCTV가 설치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A씨에게 대화를 엿들을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A씨가 대화 상황을 예견하고 실시간으로 엿들을 의도로 CCTV에 접속해 청취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 대화 녹취록 등을 (이혼 소송을 위해) 법원에 제출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미 설치돼 있는 홈캠(가정용 촬영 기기)로 녹음된 대화를 재생해 듣는 것은 ‘녹음 또는 청취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무죄라는 대법원 판결도 나온 바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2020년 5월 자택 거실에서 남편과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가 나누는 대화를 녹음하고 그 내용을 누설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기소된 최모씨에 대한 무죄 판결을 지난 2월 확정했다.
1심 법원은 별도 조작 없이 홈캠의 자동 녹음 기능으로 대화가 녹음된 것을 근거로 “(최씨가) 추가로 어떠한 작위로서 녹음행위를 했다거나 그러한 행위를 하려는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종료된 대화의 녹음물을 재생하여 듣는 것은 대화 자체의 청취라고 보기 어렵다”며 “(녹음물 재생을) 청취에 포함하는 해석은 청취를 녹음과 별도 행위 유형으로 규율하는 조항에 비춰 불필요하거나 청취의 범위를 너무 넓혀 금지 및 처벌 대상을 과도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