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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그날부터 회사는 나에게 생지옥이 됐다”…KAI “사내 절차 위반 100억 손해 끼쳐”

KAI, 정권 따라 갈지자 사업 행보에 직원들 곡소리

“정권 따라 회사가 갈지자 사업 행보를 보이는데 결국 죽어나는 건 애먼 직원들뿐입니다.”

 

한국우주항공산업(KAI)에서 20년 넘게 근무해왔던 A씨의 하소연이다.

 

A씨에게 KAI는 더 이상 애사심이 넘쳤던 그런 회사가 아니다. 지금은 ‘네가 아니면 내가’ 죽는 전쟁터로 바뀌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20년 동안 승승장구하던 A씨에게 변곡점이 생긴 건 2020년 KAI가 ‘스마트 플랫폼 구축 사업’을 기획‧추진하면서부터다.

 

이 사업은 2021년 4월부터 1000억원을 들여 2025년까지 디지털 전환과 공정 자동화장비 개발, 디지털 클러스터 구축, 인공지능 장비 마련 등을 골자로 한다.

 

문재인정부 때 내정된 안현호 사장이 야심차게 추진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이 사업에 이상기류가 생겼다고 A씨는 털어놨다.

 

주관업체 선정 등 의혹이 제기되면서 KAI는 2022년 12월 내부 감찰에 나섰다.

 

KAI는 지난해 3월까지 검수TF를 구성해 이 사업 전반에 대한 관리 실태를 점검했다.

 

A씨는 이때부터 회사가 생지옥이 됐다고 했다.

 

KAI는 이 사업 관련 부서에 근무하던 A씨가 △업체 선정 과정상 허위문서 작성 △기밀 누설 및 보안 위반 △사업이행 과정상 관리자 관리 및 감독 의무 해태 등 비위 행위를 저질렀다며 인사위원회를 열었다.

 

A씨는 회사에 자신의 무고를 항변했지만 헛수고였다.

 

이 기간 KAI는 스마트 플랫폼 사업 관련 100억원대 배임 혐의로 전‧현직 직원을 수사의뢰하고, 스마트 플랫폼 구축 업체 대표에 대해 3억원대 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생전 가볼 일이 없을 거 같았던 검찰에 가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6월 A씨는 회사로부터 ‘무기정직’에 처한다는 인사위원회 심의 결과를 통보받았다.

 

20년 넘게 회사에 충성해왔던 A씨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회사에 인사위원회 재심을 요구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경남 사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결국 그는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를 신청했다. 회사의 징계가 부당하니 이를 취소해달라는 것이었다.

 

A씨는 “회사가 밝힌 징계사유 모두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경남지노위는 “회사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A씨의 비위 행위와 그로 인한 회사의 구체적 손해가 발생한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징계사유로 삼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무기정직은 처분 당시 그 기간이 불명확해 근로자의 조직 및 일상생활에 상당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대기발령 등을 통해 비위 행위에 대한 수사의뢰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가능함에도 무기정직 처분한 것은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경남지노위가 부당징계 구제 신청을 받아들이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KAI는 지노위 판정 후 중앙노동위원회에 이 사건 재심을 신청했다.

 

올해 1월 중노위는 경남지노위와 같은 이유를 들어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중노위도 A씨 편을 들어준 것이다.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서 이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A씨는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복직하자마자 회사가 ‘재택 대기발령’ 인사 조치를 냈기 때문이다.

 

A씨는 “대기발령 사유도 모르겠고, 회사가 아닌 재택 대기발령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회사에 묻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3개월 간 대기발령 조치가 끝나고 A씨는 그제야 다시 회사로 돌아갈 줄 알았는데, 회사는 인사위원회에서 징계를 양정하지 못하고 2차 ‘재택 대기발령’ 조치를 다시 내렸다.

 

결국 A씨는 지난 4월 고용노동부에 회사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이런 상황은 A씨뿐만이 아니다.

 

스마트 플랫폼 구축 사업 추진 당시 또 다른 부서에 근무하던 B씨도 A씨와 판박이다.

 

회사는 B씨에게 사업 이행 과정에서 관리자로서 수행해야 할 관리 및 감독을 미이행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며 ‘무기정직’ 처분을 결정했다.

 

B씨도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B씨도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징계 구제 신청을 했고, 경남지노위는 B씨에 대해 부당징계가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KAI는 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지난 2월 중노위는 “무기정직 징계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재심 신청을 기각했다.

 

이후 재택 대기발령 조치도 A씨와 똑같다. B씨 역시 자신이 왜 대기발령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다.

사진=KAI 제공

A씨는 회사가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전임 사장 때는 전사가 다 붙어서 이 사업에 매진했는데 지금은 조직 내에서 역적이 돼 버렸다”며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하는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KAI는 매번 정권이 바뀌고 그에 따라 사장이 바뀌면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면서 “그저 일하는 근로자로 다시 회사에서 일하고 싶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KAI는 스마트 플랫폼 사업 건은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건으로 반부패 경영실천을 위해 부득이한 결정이었다고 밝혔다.

 

KAI 사측 관계자는 “29개 과제 550억원이 집행됐는데 외부 전문기관 확인 결과 대다수 산출물이 부실해 손해배상을 위한 민사소송이 진행 중에 있고, 사내 절차를 위반해 집행된 금액이 100억원대가 넘는 것으로 확인돼 전‧현직 임직원에 대한 수사의뢰와 징계 절차가 진행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무기정직 조치는 노동위원회에서 일부 징계 사유가 인정되고 징계절차에 하자는 없으나 징계양정은 과하다고 판정함에 따라 회사는 관련 인원에 대해 복귀 조치를 진행했다”면서 “ 다만 중노위에서 인정한 징계사유에 대한 징계결정을 마무리해야 하고, 조사 진행 과정에서 비위 사실로 의심되는 건이 추가 식별돼 확인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부득이하게 사규에 의거해 대기발령 조치한 것으로 모든 징계절차가 마무리되면 대기발령을 해지될 것”이라며 “인사대기 발령 조치는 사규와 인사위원회에 의거해 진행했으며 사유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에게 안내했다”고 반박했다.

 

끝으로 “해당 사업 추진 초기에도 이사회에 허위자료 제출 및 업체선정 과정상의 의혹 등이 제기돼 안현호 사장 재임 시절인 2021년 하반기 내부감사를 진행한 이력이 있으며 당시 과제수행 초기 단계여서 명확한 피해금액이 식별되지 않아 수사의뢰는 유보하고 일부 임원 문책 선에서 일단락됐다”며 “그럼에도 내‧외부의 지속적인 의혹과 제보가 계속됨에 따라 2022년 11월부터 과제에 대한 특별점검을 실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천=강승우 기자 ks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