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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TK’ 탄생하나 [편집인의 원픽]

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대표적인 해외 메가시티 사례로 꼽히는 ‘더 그레이터 런던’(The Greater London)의 전경. 런던 중심부 고밀도화와 외곽 지역 개발·편입으로 세계적으로 경쟁력있는 도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이 모든 것을 틀어쥐고 있는 틀로는 거대한 도전에 대처할 수 없다. 지방정부가 실질적 권한과 기능을 갖고 자립적으로 발전을 도모해 세계 속의 지역으로 부상하는 국가대개조가 필요하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 후보가 내놓은 ‘강소국 연방제‘ 공약이다. 이회창 후보는 한나라당 후보로 두차례, 무소속 후보로 한차례 대권에 도전했다. 2007년 무소속 후보로 뛰면서 ‘국가대개조 프로젝트’를 내놓았는데 세 번의 그의 대선 도전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약이다. 공약의 핵심은 대한민국을 싱가포르와 같은 강소국(메가시티 성격) 5∼6개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만들고 중앙정부가 권한을 대폭 지방정부에 이양한다는 것이다.

 

그의 공약은 정치 도전 실패와 함께 사라졌지만, 최근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위기 속에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4·10 총선 과정에 불거진 김포-서울 편입의 ‘메가시티’ 공약은 시들해진 반면 대구·경북 지자체장은 손을 잡고 통합자체단체 출범을 추진키로 했다. ‘“수도권 일극서 다극 체제로 전환”...메가 지자체 탄력’(6월5일자·대구=김덕용 기자, 이규희·구윤모 기자) 기사는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우동기 대통령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 4자간 합의 결과를 담고 있다. 지난 4일 회동에서 이들은 큰 틀의 대구·경북 행정통합 로드맵에 의견을 모았다. 물론 넘어야할 산이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쟁력은 물론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지방정부의 생존을 위해 ‘메가 지자체’ ‘메가시티’ 논의는 불가피하다. TK 지역이 ‘국가대개조 프로젝트’의 첫 꼭지를 따게될 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부터), 이철우 경북도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우동기 지방시대위원장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구·경북 통합 관계기관 간담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날 4자 회동에서는 연내 ‘대구·경북 통합 특별법’을 제정하고 2026년 7월1일 통합 자치단체를 출범시킨다는 로드맵이 제시됐다.  뉴시스

◆“2026년 7월 TK 통합지자체 출범시키자”

 

“이번 통합은 지난 100년간 대한민국 근간을 이뤘던 기초-광역-국가 3단계 행정체계를 지자체-국가 2단계 행정체계로 만드는 대한민국 지방행정개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홍준표 시장)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발전, 저출산 문제,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종속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대구·경북 행정통합이다.”(이철우 지사)

 

경남 창원시와 마산·진해시, 청주·청원 처럼 생활권 단위에서 기초자치단체 통합 사례는 있어도 광역단체간 통합은 이뤄진 적이 없다. 지역 주민들의 의견도 중요하고 통합 과정에서 명칭, 청사 위치 등 합의해야할 사항도 많다. 무엇보다 중앙정부와 통합지방정부간 권한 이양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이회창 후보의 공약처럼 중앙정부가 재정, 규제 관련 권한을 대폭 이양하지않으면 ‘메가 지자체’‘메가시티’가 자체 경쟁력을 키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철우 지사는 “연방국가의 주정부 수준으로 대폭적 권한 이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단체장간 합의에도 불구하고 좌초된 사례도 있다. 인구 1000만명의 ‘동북아 8대 메가시티’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걸고 야심차게 추진한 ‘부울경 메가시티’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동력이 꺼져버렸다. 홍 시장과 이 지사가 2026년 7월1일 통합 자체단체 출범 로드맵을 제시한 것도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서다. 지방선거에서 단체장이 바뀌더라도 무산시킬 수 없도록 ‘대못’을 박아놓겠다는 것이다. 

 

2022년 4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부울경 특별지자체 지원을 위한 협약식’에서 참석자들이 양해각서 체결 후 박수를 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순탄하게 추진됐지만 그해 지방선거로 광역단체장들이 바뀌면서 추진 동력을 잃었다.  연합뉴스

◆‘부울경 메가시티’ ‘충청 메가시티’ ‘메가 서울’도?  

 

‘TK 메가시티’가 공론화하면서 다른 지역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가장 진척 정도가 빨랐던 ‘부울경 메가시티’는 더불어민주당이 재점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3선의 김정호(김해을) 국회의원은 ‘부울경 메가시티 특별법’을 제22대 국회 자신의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하겠다고 7일 밝혔다. 부울경 메가시티 조직과 재정, 권한을 명시하는 특별법을 제정해 2022년 무산됐던 메가시티 추진 동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토의 12%인 수도권 인구가 전체 절반을 넘어섰고, 100대 기업 본사의 90%와 국내 20위권 내 대학의 90%가 수도권에 초집중된 상황에서 부울경 메가시티는 지역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대전과 세종, 충북, 충남 4개 시·도도 지난해 1월부터 행정통합의 전 단계인 특별지자체 설치를 추진해왔다. 국민의힘 선거 참패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메가 서울’ 구상도 대선 국면에서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큰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수도권에서 ‘메가시티’ 공약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을 만하다. 전세계적으로 도시·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메가시티가 형성되는 흐름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이회창 후보가 ‘연방제’ 공약을 내걸었을 때만해도 ‘북한과 대치중인 분단 상황에서 연방제로 중앙 정부 권력을 위축시켜서는 안된다’는 논리가 득세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분단 해소가 요원해진 만큼 대한민국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방 경쟁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민의힘이 경기 김포시 등의 서울특별시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메가 서울' 논란이 정치권을 덮쳤다.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한 건널목에 서울시 편입이 좋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뉴스1

P.S. 취재한 김덕용 기자에 물었습니다. 

 

-첫 광역단체 통합이 실현되려면 단체장 의지가 중요한데 홍준표 대구시장의 ‘메가 지자체’ 추진 의지는 어느 정도인가.

 

“홍 시장은 연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구·경북 행정통합의 필요성과 밑그림 등을 제시하는 등 행정통합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관심을 보이는 행정통합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낸다면 홍 시장이 2027년 차기 대선에서 유권자들에 대권 주자로서 역량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도 대권에 도전하든 2026년 지방선거에 재출마하든 정치적 실익이 크다는 점에서 두 단체장이 의기투합할 수 있다.”

 

-단체장간 합의를 이뤘다가 무산된 ‘부울경 메가시티’ 사례처럼 정치 환경 변화에 따라 좌초될 가능성은.

 

“대구시·경북도의 행정통합을 적극 지원하라고 지시한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3년이나 남아 있는 데다, 두 단체장이 생각하는 행정체계 개편 방향이 부합해 큰 변수가 없다면 이번에는 강하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책 실현을 위해 넘어야할 산이 많은데 가장 어려운 과제를 꼽는다면. 

 

“행정통합은 시·도지사의 뜻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시·도민의 의사를 묻는 투표로 결정이 나는 만큼 이른 시일내 통합자치단체 명칭, 청사 위치, 지역 발전 전략 등 대구·경북 500만 시·도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통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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